[주거복지를 넘어 공간복지로] <5> 서울 노원구 중계목화4단지
서울 노원구 중계목화4단지 숲길에서 단지 시설 개선에 ‘공간 닥터’로 참여한 최혜영 성균관대 교수(가운데)와 이윤주(왼쪽), 박경의 씨가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숲길은 공간 닥터 프로젝트에 따라 나무덱이 깔린 둘레길로 바뀔 예정이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는 올 4월부터 노후 임대아파트 단지에서 유휴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마련하기 위한 ‘공간 닥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건축 도시 조경 등 전문가 26명을 ‘공간 닥터’로 임명해 주민에게 필요한 복지시설을 발굴하거나 공간 개선방안을 마련한다. 의사가 질환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듯 공간 전문가들이 문제점을 찾아내 공간 개선 방안을 제시한다는 의미로 ‘공간 닥터’라는 이름을 붙였다. 대상 아파트는 완공 20년 이상이고 500가구 이상인 21개 임대단지다. 이런 아파트들엔 어린이, 노인들이 많이 살지만, 이들을 위한 복지시설은 부족한 실정이다.
21개 사업 단지는 지역별로 5개 그룹으로 나눠 한 명씩 책임자를 배정했다. 팀을 이루는 공간 닥터들은 각기 다른 전공자들이 섞이도록 했다. 공간 닥터들은 할당을 받은 아파트단지의 개선 사업을 책임지고 개선안을 마련한다. 또 다른 전문가들이 맡은 단지의 개선안에도 조언한다. 공간 닥터들은 5∼9월 현장에 투입돼 조사와 주민 의견 청취 등을 진행했다. 활용도가 떨어지는 씨름장 등 노후 시설은 없애고 주민 휴게 시설과 생태 공간을 늘리는 개선안을 마련했다. 최근 시공사를 선정한 중계목화4단지를 시작으로 연말까지 월계사슴2단지, 가양4단지, 방화11단지 등이 시설개선 공사에 들어간다. 나머지 17개 단지는 개선안을 바탕으로 내년에 착공한다.
중계목화4단지 공간 닥터로 위촉된 최혜영 성균관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일단 주민 의견을 청취했다. 어린이들은 여러 높낮이로 된 지형을 체험할 수 있는 모험형 놀이터를 희망했다. 이런 형태는 현재 ‘언덕 놀이터’로 불리며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놀이터 형태 중 하나다. 놀이터 옆 유휴 공간에는 꽃을 심고 정원을 만들기로 했다. 나무숲에는 나무덱을 설치하고 산책길을 구상했다. 아파트단지 외곽을 도는 길이 약 1km의 둘레길도 만든다. 놀이터 분위기가 밝아지고 산책로가 생겨 행인이 많아지면 놀이터에서 일탈 행위를 하던 청소년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공간 닥터팀과 주민의 의견이 맞서 보류된 방안도 있다. 공간 닥터팀은 주민 소통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텃밭 조성을 제안했다. 반면 주민들은 관리하기 어렵다며 반대했다. 그 대신 주민들은 단지 내 벤치를 없애달라고 했다. 벤치에서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사례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이 의견은 개선안에 반영됐다. 설계도면화 작업을 맡은 이윤주 엘피스케이프 공동 대표는 “단순하게 공간 활용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단지 이미지를 바꾸고 주민도 적극 참여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SH공사는 2기 공간 닥터 프로젝트로 임대아파트에 설치된 작은도서관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SH공사 관계자는 “59개 임대아파트단지에 작은도서관이 설치돼 있다”며 “설립 당시와 비교하면 활용도가 많이 떨어졌다. 주민들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