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 종료카드 또 만지는 靑… 이러면서 트럼프만 욕할 수 있나
동아일보DB
이승헌 정치부장
정부여당 인사들의 이런 반응을 접하면서 필자는 지소미아 종료 시한 직전에 다양한 기회로 만났던 미 행정부 인사들의 말과 표정이 떠올랐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이지만 비공개를 전제로 만났기에 이들이 누구인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여기서 구체적으로 소개할 수 없다. 다만 이들의 반응이 외교적으로 통용되는 표현의 수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고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요약하면 한국에 대단히 실망했고(disappointed), 이런 상황이 황당하다(embarrassed)는 것이었다. 이들의 반응이 반드시 정당하거나 합리적이라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남의 나라에 와서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은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좋든 싫든 우리의 지소미아 종료 카드, 그로 인해 한미동맹이 흔들리는 상황에 대해 미국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강경했다는 것이다. 미 국무부가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결정에 대해 갱신(renew)이라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표현을 사용한 건 이런 기류를 완곡하게 담아낸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 사람들은 지소미아 카드로 이른바 ‘한국식 벼랑 끝 전술’이 먹혔다는 데 방점을 둔다.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지소미아 종료를 언급하지 않았다면 막판에 미국이 움직여서 일본을 설득할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효과가 있었다고 해서 일본에 수출 규제 해제를 압박하기 위해 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는 한국을 미국이 어떻게 바라볼지는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이제 지소미아 카드를 협상 칩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을 유지하는 선에서 대처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한미동맹을 스스로 옭아매는 이런 식의 자해적 협상은 우리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이 다른 건 몰라도 전통적으로 안보에는 여야 구분 없이 보수적이다. 트럼프 시대엔 더 말할 것도 없다. 안보를 담보 삼는 도박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