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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한 번 하고 마는 정치공작은 없다

입력 | 2019-12-04 03:00:00

김경수 댓글 조작 유죄 이어 백원우 선거개입 의혹 받아
검찰-정권 명운 건 공방 예상
적폐청산 역사전쟁 사고로는 親文 정치공작 유혹 못 벗어나




송평인 논설위원

민주화 이후 수사기관은 선거 후보자나 그 주변인에게 혐의가 있다 하더라도 선거 전에는 수사를 하지 않고 선거 뒤로 미루는 관행을 쌓아 왔다. 지난해 6·13지방선거를 3개월도 채 남겨두지 않았을 때 울산지방경찰청이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이 근무하는 시청을 압수수색한 것은 뜻밖이었다.

당시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이 받은 제보의 근원지는 백원우 당시 대통령민정비서관으로 드러났다. 백원우는 반부패비서관실을 통해 경찰청에 넘기는 방식으로 제보를 세탁했다. 그러나 거기서 꼬리가 잡혔다. 백원우는 “많은 제보를 넘기기 때문에 김 전 시장 관련 제보가 특별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으나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에 따르면 백원우가 단건(單件)으로 넘긴 유일한 제보가 김 전 시장 관련 제보였다. 게다가 제보는 공문으로 넘기게 돼 있는데 그 제보만 공문 형식을 취하지 않고 넘겼다.

지난해 김 전 시장 내사 단계에서 백원우 특감반원 2명이 울산을 방문했다. 그중 검찰로 복귀한 수사관이 유력한 증인이었는데 그가 검찰에 출두하기 직전 자살을 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상황이다. 황운하는 수사가 무혐의로 끝났는데도 좌천되기는커녕 오히려 영전했다. 백원우와 황운하 사이에 물밑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이 부분은 의혹일 뿐이다. 하지만 물 위로 드러난 몇몇 사실만으로도 정치공작이라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백원우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간부 출신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향해 ‘사죄해’라고 고함치며 과격한 성정을 표출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부처별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는 기획안을 짠 장본인이다. 이후 각 부처에서 과거 정권의 정책 결정권자만이 아니라 실무자까지 경쟁적으로 문책하는 광란이 벌어졌다.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와 뒤처리도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아니라 백원우 주도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백원우는 17,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 20대 총선에서 연거푸 떨어지긴 했지만 재선 의원 출신이 차관급 수석비서관 밑에 비서관으로 들어갈 때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가 한 일이 유재수 감찰을 무마한 정도로 끝이겠느냐는 의문이 든다. 울산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선거 개입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텔레그램의 유재수 단체대화방에서는 김경수 경남도지사,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 등 친문(親文) 실세들이 등장한다. 잡담만 나눈 게 아니라 국장급 인사까지 논의한 것으로 나온다. 지금까지 드러난 퍼즐들을 맞춰 보면 백원우는 배후에서 움직이는 숨은 국정 운영 커넥션이 공식 조직과 연결되는 주요 접점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경수는 드루킹 조직에 의한 댓글 여론 조작을 사주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 2심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한 번 하고 마는 정치공작은 없다. 정치공작은 한번 맛보면 그 유혹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공작을 정치로 알고 살아온 운동권 정치인 집단은 더 그렇다.

적폐청산 역사전쟁 정치공작, 셋은 긴밀히 연결돼 있다. 적폐청산은 이명박 박근혜 두 보수 정권을 역사에서 지워야 할 정권으로 만들어 보수 정당의 존재 기반을 흔들려는 시도다. 역사전쟁은 대안의 틀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이승만과 박정희가 정착시켜 한국을 성공으로 이끈 자유민주주의와 산업화의 틀을 깔아뭉개고 보는 것이다. 이런 사고를 하는 집단은 정치공작의 유혹에서 벗어나려 하기는커녕 정치공작을 시도해서라도 권력을 잡는 것이 정당하다는 도착(倒錯)에 빠지기 쉽다.

김경수 조국에 이어 이번에는 백원우 차례다. 경찰이 놓친 김경수는 허익범이라는 내유외강(內柔外剛)의 정의로운 특별검사에 의해 법정에 회부됐다. 조국의 경우는 그의 위선적 행태가 널려 있어서 언론이 앞다투어 폭로하고 깨어 있는 국민이 몸으로 사퇴를 얻어냈다. 백원우의 정치공작은 청와대 권력의 한가운데서 일어났다. 결정적 증언을 해줄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검찰 외에는 이 장벽을 뚫고 나갈 주체는 없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명운과 정권의 명운이 동시에 걸려 있다. 윤석열의 실력과 용기는 여기서 판가름 날 것이다. 윤석열이 마지막을 맞든가, 정권이 일찍 레임덕에 들어가든가 할 것으로 본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