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서비스 관련 발언에 대해 사과한 김승현 스포티비 해설위원. KBL 제공
조응형 스포츠부 기자
1990년대 연세대 농구부를 국내 최강으로 이끈 최희암 전 감독은 당시 수천 명의 오빠부대를 몰고 다닌 소속 선수들을 자주 다그쳤다. 그럴 때마다 입버릇처럼 했던 얘기가 있었다. “너희들이 볼펜 한 자루라도 만들 수 있느냐. 생산성 없는 공놀이를 할 뿐인 운동선수들이 돈도 벌고 대접받을 수 있는 것은 팬들이 있기 때문이다.”
최 전 감독의 말대로라면 팬들은 이미 팬 서비스에 대가를 지불한 셈이다. 입장권, 유니폼, 응원용품 구매 등 직접적인 소비는 차치하더라도, 단순한 ‘공놀이’를 수많은 사람들의 밥줄이 걸린 산업으로 바꿔 놓았으니 운동선수로서는 생계의 은인(?)이다. 그런 팬들을 향한 마음은 승패를 떠나 한결같아야 한다.
최 전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스포츠 선수들이 볼펜을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볼펜과 종이만 있으면 평생 기억에 남는 선물을 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 최고 스타로 꼽히는 마이크 트라우트(LA 에인절스)는 “사인을 하는 데 5초면 되지만 아이들에게는 평생 기억이 된다. 어렸을 때 사인을 받지 못하고 집에 가면 어떤 기분인지를 나 역시 잘 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에게는 반드시 사인을 해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존재 이유’, ‘사명’ 같은 거창한 단어를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선수들이 누군가의 플레이에 환호하던 시절을 조금씩만 돌이켜 본다면 적어도 어린 팬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진정한 팬 서비스의 출발점도 거기가 아닐까.
조응형 스포츠부 기자 yes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