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 경제부 차장
다만 선도인재 양성책을 발표한 게 작년인데 ‘선도’를 ‘혁신’으로 바꾼 것 말고 인재 육성 방안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인공지능(AI) 대학원 5곳과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신설, 평생직업교육 강화로 23만 인재를 만들 수 있을까. 한 관료는 “AI 시스템반도체 ICT융복합 사업을 지원하겠다. 대학을 통해 BK21사업 첨단 인재도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분야는 예산안이 처리되지 않아 아직 모른다고 했다. 23만이라는 숫자가 나온 배경이 여전히 미스터리지만 건너뛰고 왜 하필 ‘혁신인재’인지 물었다. “AI라든지 5G 데이터라든지 모두 혁신 분야로 포섭돼 있어요.” 그냥 인재라고 하면 될 걸 현 정부의 정책 브랜드 격인 ‘혁신’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를 물었는데 동문서답이 돌아왔다. 관가에서 새롭고 좋아 보이는 것에 혁신을 붙이는 게 당연해진 요즘, 관료에게 이런 건 질문거리가 아니라는 걸 내가 몰랐다.
모두가 정치에 빠져 있으면 관료는 형용사로 가득 찬 보고서를 쏟아내며 바쁘게 일하는 척한다. 관료는 인사권자에게 어필하면서 정치권을 기웃거리거나 자리를 보전할 수 있겠지만 정작 미래 기술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정부 출연연구소의 연구개발(R&D) 기술을 평가하는 잣대로 TLE(Technology Level Evaluation)라는 게 있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등의 TLE에서 3, 4등급을 받으면 특허권을 확보할 수 있고 실증실험을 통과하면 5, 6등급, 상용화를 위한 추가 실험을 통과하면 7, 8등급이다. 기업이 특허기술을 사들여 실제 공정에 투입하려면 7, 8등급은 돼야 하지만 우리의 R&D 기술은 대부분 3, 4등급에 멈춰 있다. 실증실험을 하려면 예산이 많이 든다. 실험이 실패하면 문책을 당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공무원들이 TLE 3, 4등급 수준의 특허권만 유지하며 더 이상 진도를 빼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기술 발전을 명분으로 혁신을 구호로 들고나올 때마다 일본의 경제보복 직후 만난 한 국책연구기관장의 말이 늘 마음에 걸렸다. “기술 인재는 이미 많지만 기술자와 말이 통하는 관료는 너무 적다.”
홍수용 경제부 차장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