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의 엘사.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우리의 자랑스러운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V’(1976년)는 또 어떤가. ‘훈이’와 함께 태권V를 조종하는 ‘영희’는 스스로 존재하는 영웅이라기보단 시도 때도 없이 기절함으로써, 세상을 구해야 할 훈이를 신경 쓰게 하는 애물단지로 그려진다. 영희의 역할은 “홍홍. 성공이야” 하면서 훈이의 영웅적 행동에 추임새를 넣어 주는 ‘내조자’에 불과하다. 게다가 훈이와 영희를 길러낸 잘난 ‘박사’ 아빠들만 등장할 뿐, 놀랍게도 이 뛰어난 소년 소녀를 낳은 어머니들의 존재는 단 한 번도 영화에서 언급되질 않는다. 훈이의 아버지인 김 박사와 영희의 아버지인 윤 박사는 모두 ‘돌싱’ 모임에서 우연히 만나 구국의 결단으로 똘똘 뭉치는 동호회원이란 말인가.
올해 ‘캡틴 마블’과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등장한 여성 슈퍼히어로 ‘캡틴 마블’은 다소 변화된 시각을 보여준다. 이름부터 여성성이 ‘제로’인 데다 노출이 ‘1’도 없는 옷차림에다, 쇼트커트 헤어에다, 심지어는 불주먹이라는 완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굳이 여성이어야 하나’란 질문이 남는다. 남성성으로 무장한 여성 영웅에 지나지 않아 보이는 탓이다.
요즘 난리가 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야말로 21세기적 여성 영웅을 제대로 담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들 관객 입장에선 1편에 비해 귀에 팍팍 꽂히는 ‘렛 잇 고’ 같은 주제가가 없고, 뮤직비디오처럼 작위적인 노래 장면이 많으며, 유머와 액션이 밋밋하다는 불만을 가질 수 있겠지만 와우, 영화를 뜯어보면 여성 리더십의 놀라운 비밀이 서브텍스트로 숨겨져 있는 것이다.
자, 지금부터 이 영화 속 주인공 자매인 ‘엘사’와 ‘안나’가 기존 남성 영웅들의 대용물이 아니라 여성성이 갖는 탁월한 권능을 펀더멘털로 삼는 진짜 여성 히어로인 이유를 낱낱이 까발려 알려 드린다, 라고 말하기 전에 두려움이 앞선다. 보나마나 몰지각한 일부 남성으로부터 “너 페미(페미니스트)냐?” “이런 × 같은 글로 균형적인 인간인 것처럼 어필해서 제21대 국회의원 되려고 하냐?” “잘생기고 글도 잘 쓰는 놈이 여자들한테 인기까지 끌어서 세상을 다 가지려는 음모냐?” 같은 악성 댓글을 받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 칼럼을 통해 영화 ‘미성년’과 ‘걸캅스’를 다루면서 ‘지질한’ 남자들의 생리를 비판한 뒤 어마어마한 ‘악플’에 시달린 트라우마가 스멀스멀 떠오른다. 하지만 나 스스로 생각해도 깜짝 놀랄 천재적인 분석이니 터진 입으로 발설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자, 귀담아들어 보시라.
일견 ‘겨울왕국 2’는 영웅서사의 전형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태생의 비밀을 좇아 목숨을 건 모험의 여정을 떠나는 과정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명실상부한 영웅으로 재탄생하는 성장담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정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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