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은유, 기계, 미스터리의 역사/샌디프 자우하르 지음·서정아 옮김/364쪽·1만6000원·글항아리, 사이언스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별’. 비통한 얼굴의 남자가 한쪽 가슴을 움켜쥐고 있다. 심장은 우리 내부 신체기관 중 유일하게 움직임이 느껴지는 곳이어서 감정의 원천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글항아리사이언스 제공
미국 심장내과 의사인 저자는 생명과 죽음을 관장하는 기관인 심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대의학에서 중세, 현대의학에 이르기까지 ‘과학적인 심장’뿐 아니라 자신의 개인사를 비롯해 사회심리학적 의미의 ‘정서적 심장’까지 맛깔나게 풀어낸다.
살아 있는 심장은 쉬지 않는다. 다만 뛸 뿐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심장은 거의 30억 번을 박동한다. 박동할 때마다 심장은 피가 총길이 16만여 km에 이르는 혈관을 순환하도록 뿜어낸다. 일주일 동안 심장을 통과하는 혈액을 모으면 웬만한 집 뒷마당의 수영장쯤은 너끈히 채울 수 있을 정도.
9·11테러 현장에서 응급의료진으로도 활동했던 그는 심장질환의 사회심리적 요인도 잊지 않는다. 저자는 “심장은 일종의 펌프다. 그러나 감정적인 펌프다”라고 단언한다. 예를 들어 두려움과 슬픔은 극심한 심근 손상을 야기할 수 있다. 심장박동과 같은 무의식적 과정을 조절하는 신경은 괴로움을 감지해 비적응성 투쟁도피반응을 유발함으로써 혈관에 수축신호를 보내고 심장을 급속히 뛰게 하고 혈압을 상승시켜, 궁극적으로는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
“심장은 집과 같다. 방과 문이 있다.(…) 산소를 소진한 혈액은 우심방으로 돌아와 역류방지 장치를 통과한 뒤 우심실로 들어간다. 우심실은 혈액을 폐로 내보낸다. 산소를 충전한 혈액은 폐를 떠나 좌심방으로 들어가고, 또다시 역류방지장치를 거쳐 좌심실로 들어갔다가 대동맥을 통해 전신으로 내보내진다. 온몸을 흐른 혈액은 두 개의 대정맥에 모여 우심방으로 되돌아간다. 다시금 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혈액순환의 원리는 17세기 초반에야 비로소 확인됐다. 심장의 실체를 알기 위해 인류는 금기를 깨고 관찰을 감행해왔다. 누군가는 타인뿐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 위험에 빠뜨려가며 탐구해온 결과 인공심장까지 개발하는 역사가 책에 담겼다.
이 책을 읽으며 지난가을, 중환자실에 누워 계셨던 장인어른의 심장박동수가 점점 줄어들던 순간이 떠올랐다. 결국 계기판에 ‘0’이라는 숫자가 떠오르고, 그래프가 일직선이 되는 순간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받아들였다. 이 책은 심장을 다룬 글이지만 삶이란, 죽음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할 기회를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