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베스트셀러]1994년 종합베스트셀러 5위(교보문고 기준) ◇서른, 잔치는 끝났다/최영미 지음/128쪽·8000원·창비
조해진 소설가
그렇다고 이 시집이 단지 매력적인 제목으로 돌풍을 일으킨 건 아닐 것이다. 말장난이나 사춘기적 감성과는 거리가 먼 문학적인 시집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이유는 시집에 수록된 쉰여섯 편의 시에서 찾아야 할 테다.
물론 시집이 인기를 끈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시집이 출간된 1994년은 기나긴 군사정권이 끝나고 문민정부가 막 들어선 때였다. ‘잔치’는 군사정권 타도를 외치던 혁명이기도 한 셈이다. 이 전환의 시대에 최영미는 시집 표제작에 이렇게 썼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잔치(혁명)는 끝났다는데 제대로 끝낸 건지 알 수 없어 다들 조금씩은 회의감에 젖어 있던 때, 젊은 시인의 이 고백은 시대적 호응을 얻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살아남은 것은 슬픔이 아니라 배고픔이라는 직설에서(‘살아남은 자의 배고픔’) 나만이 순수하지 못한 게 아니라는 위로를 얻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1995년 미성년을 벗어나 대학생이 됐다. 대학에 들어가 보니 혁명은 흔적조차 희미했고 싸울 대상은 불분명했다. 개인이 곧 신념이자 윤리인 시대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세월은 부지런히 흘렀고, 운동가를 부를 줄 알던 사람들은 이제 중장년이 돼 서른 살은 잔치가 끝난 나이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잔치의 시작을 알리는 새파란 청춘이라고 말한다.
최근에 시인의 도전은 미투 운동으로 번져갔다. 올해 발간된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미)에서도 그 마음을 엿볼 수 있지만 사실 1994년 그는 이미 완성된 전사(戰士)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