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바링’은 본래 학교에서 약한 학생을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걸 뜻하는 중국어다. 중국 정부는 올해 미국만을 겨냥해 ‘바링주의’ ‘바링 행위’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사용 빈도가 부쩍 많아지면서 중국에서 바링주의는 미국을 비판하는 유행어가 됐다. 2일 중국 잡지 야오원자오쯔(咬文嚼字)가 선정한 중국의 올해 10대 유행어에 ‘바링주의’가 선정되기도 했다.
왕 위원이 쓴 ‘바링 행위’를 일부에서 ‘패권주의’로 번역하기도 했지만 바링주의는 중국이 미국의 중국 ‘괴롭힘’을 비난하기 위해 고안해 낸 용어라는 점에서 패권주의와는 뉘앙스가 다르다. 왕 위원이 미국만을 겨냥한 이 ‘바링’ 용어를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에 온 첫날부터 떠날 때까지 쓰며 미국에 직격탄을 날렸다. 분명 이례적이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과 중국은 이웃이자 친구이고 동반자”라고 강조하며 함께 미국의 ‘바링 행위’에 맞서자고 요구했다.
미중 갈등은 무역, 안보를 넘어서 더 근본적인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홍콩과 신장위구르 문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둘러싼 중국과 미국 간 서로 다른 가치관의 충돌이 얼마나 첨예한지 보여준다. 왕 위원은 미국의 “내정 간섭”을 비판하며 “중국을 억제하려는 배후에 이데올로기의 편견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12월 중국 국제정치학계의 대표적 석학 옌쉐퉁(閻學通) 칭화(淸華)대 국제관계연구원장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미중 경쟁이 이데올로기 영역 바깥에서 일어나도록 통제해야 신(新)냉전을 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중 갈등이 이데올로기 냉전으로 가는 길목에서 한국 정부는 한국을 끌어당기려는 중국과, 이를 경계하는 미국 사이에 놓였다. 내년은 미중 갈등 격화의 세계사적 국면을 헤쳐 가는 한국 정부의 지혜가 시험대에 오르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