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전공의 근무개선 강화… 수술하다가 6시 되면 “퇴근하라” 야간엔 교수-전담의가 맡아… 서울대병원 외과수술 23% 줄어 정부, 수련과정 감독에만 매달려… 병원 수술 감소 피해는 환자 몫 “입원전담의 확충 등 대책 필요”
지난달 말경 서울의 한 대학병원 수술실. 오후 1시부터 시작한 췌장암 수술이 길어져 시곗바늘이 오후 6시를 가리키자 집도하던 교수는 레지던트를 먼저 내보냈다. 교수는 펠로(전담의)와 둘이서 오후 8시경 수술을 끝냈다.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일명 전공의법)이 규정한 주 80시간 근무를 지키려면 수술 중이라도 오후 6시 이후에는 전공의를 퇴실시키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인턴과 레지던트를 뜻하는 전공의의 처우 개선을 위한 전공의법이 도입된 이후 대학병원에서 인력이 부족해 외과수술이 지연되고 있다. 외과 및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가 줄어드는 데 이어 근무시간까지 단축되면서 ‘수술 절벽’이 더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대병원의 올해 외과 수술 건수는 지난해보다 23% 급감했다. 지난해 1만2031건의 수술을 했지만 올해는 이달 말까지 예약된 수술을 다 합쳐도 9240건에 불과하다. 2015년 이후 매년 1만 건 이상이었던 수술 건수가 올해는 지난해보다 2791건이 줄어들어 1만 건이 채 되지 않는 것이다.연말까지 예기치 않은 응급수술을 최대한 감안해도 지난해보다 2500건 이상은 줄었다.
서울대병원 박규주 외과 과장은 “올해 전공의의 80시간 근무제가 강화되면서 수술 건수가 대폭 줄었다”며 “제도가 보완되지 않으면 2, 3년 내에 외과 수술 건수를 지금의 3분의 2 이하로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전공의는 요즘 웬만한 응급수술이 아니면 오후 6시 이후 수술에 들어가지 않는다. 암 수술이나 콩팥, 간 이식수술처럼 손이 많이 필요한 장시간 수술도 마찬가지다. 서울 A의대 교수는 “6∼7시간 걸리는 수술은 되도록 오후에 잡지 않는다”며 “환자는 답답하겠지만 수술 날짜를 미뤄 오전에 시작해야 오후 6시 전에 전공의를 퇴근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B대학병원 외과 교수는 “오후 6시 이후 전공의는 원칙적으로 수술실에 못 들어가기 때문에 야간에 펠로와 둘이서 수술을 3건이나 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C의대 교수는 “펠로마저 주 80시간 근무를 요구하면 어떡하느냐고 교수들끼리 얘기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 입원전담전문의 확충 필요
전문가들은 이런 제도 변화로 중증환자들이 수술을 받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등 환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공의를 추가 충원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도 나오지만 외과 전공의 자체가 줄어드는 게 현실이어서 여의치가 않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 외과 레지던트 지원자는 정원(1243명)의 74.7%(929명)에 그쳤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전공의 수련 환경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에 대해 전공의법 수련규칙 위반으로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대형병원에서는 전공의들의 장시간 근무와 인력 공백을 동시에 막으려면 입원 환자의 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입원전담전문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대한외과학회 수련교육이사인 경희의료원 이길연 교수는 “의사 1명이 너무 많은 환자를 봐야 한다는 것이 문제”라며 “전공의는 역량 중심으로 교육하되 이들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입원전담전문의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대병원 박규주 과장은 “상급종합병원으로 환자가 몰리지 않도록 의료체계 개편 등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