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생전에 “지휘란 음표 뒤에 숨은 우주를 찾는 여정”이라고 했다. 예컨대 베토벤이 ‘합창’ 교향곡에서 말하고 싶어 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의 음표, 악상 기호, 빠르기, 박자 등 수많은 도구를 통해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지휘자는 악보는 물론 작곡가의 전기, 편지, 일기와 당시 시대 상황까지 끊임없이 공부한다.
▷지휘자는 프로야구 감독, 해군 제독과 함께 미국 남성들이 선망하는 3대 직업이라고 한다. 손짓 하나로 좌우하는 절대 권한도 매력적이지만, 각 분야 최고라고 자부하는 여러 사람의 마음을 모아 목표를 이뤄내는 성취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아바도는 연습 중 “들으세요”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는데, 연주자들이 다른 파트 소리를 들으면서 지휘자가 만들려는 소리의 모양과 의미를 알기를 바랐다고 한다.
▷남성에게만 붙이던 마에스트로(Maestro·거장)란 호칭이 여성 지휘자에게 붙기까지는 수많은 여성 지휘자의 노력과 눈물이 있었다. 여성 밑에서 노래할 수 없다는 가수의 항의로 무대에서 내려오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처음으로 여성에게 지휘를 맡긴 게 불과 14년 전인 2005년 11월 빈 무지크페라인잘 연주회에서다. 여성 지휘자는 합창단, 교향악단, 오페라 순으로 적다. 그나마 객원지휘는 많지만 음악감독이나 상임지휘자는 소수다. 김은선이 얼마나 어려운 길을 걸었을지 짐작이 간다. 브라바(brava)!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