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첩보 제보자로 알려진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 발표와 다른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문병기 기자
4일 윤도한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 하명(下命) 수사 의혹 제보자를 청와대가 의도적으로 숨긴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이같이 말했다. 국정농단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순수함을 믿어 달라는 얘기다. 1년 전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의 폭로로 불거진 민간인 사찰 의혹 당시 “문재인 정부엔 민간인 사찰 DNA가 없다”며 선의를 앞세웠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명 수사 의혹에 대한 청와대 대응은 민간인 사찰 의혹과 거의 같은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다. 당시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며 도덕적 권위를 앞세운 호소로 대응에 나섰던 청와대는 이번에도 “허탈할 정도로 일상적인 첩보”, “완전한 허위와 조작” 등 감정적 언어들로 끊임없이 제기되는 의혹들을 반박하고 나섰다.
하지만 ‘김태우 사태’ 때와 달리 하명 수사 의혹은 청와대의 해명이 거듭될수록 의혹이 증폭되고 상황이 꼬이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정비서관실 행정관이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비위 첩보를 경찰청에 이첩한 것은 “제보를 편집만 한 것”이라는 청와대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는다고 하더라도 부적절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이 직접 정치를 권할 정도로 막역한 송철호 울산시장에게 유리한 첩보가 아니었더라도 민정수석실 행정관이 직권남용의 위험을 무릅쓰고 첩보를 경찰청에 넘겼겠느냐는 의문에 청와대는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1년 전 청와대와 가장 큰 차이점은 첩보 이첩 과정에 대한 자체 조사를 마무리하고도 아무런 후속 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달 29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대략적인 것은 내부적으로 파악이 대충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며 자체 진상 조사 사실을 밝혔지만 열흘이 넘도록 청와대가 어떤 문제점을 발견해 누굴 징계했다는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김태우 사태’ 당시 특감반에 대한 감찰을 거쳐 특감반원 전체를 교체하고 특감반장이 사태 책임을 지고 물러나며 수습 의지를 보였던 것과는 다른 대응이다.
민간인 사찰 의혹과 하명 수사 의혹은 모두 조국 전 대통령민정수석이 이끈 청와대 1기 민정수석실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의혹이다. 조 전 수석은 민정수석을 맡은 뒤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는 완전히 다른 민정수석실을 표방했다. 민정수석 취임 두 달 만에 우 전 수석이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이후 도입한 민정수석실용 특수용지 사용을 금지하고, 민정수석실 앞에 설치된 보안 검색대를 없앴던 것이 상징적이다. 정권을 흔든 ‘드루킹’ 사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을 두고 여당이 민정수석실의 무능함을 비판할 때마다 조 전 수석은 검찰 수사를 내버려 두는 것이 도덕적 우위를 증명하는 일이라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하명 수사 의혹에 “전혀 문제가 없다”며 무작정 감싸기만 하는 청와대의 대응은 청와대 사무실 벽마다 걸려 있는 ‘춘풍추상’과는 거리가 멀다.
청와대 내에선 하명 수사 의혹에 대해 “수사 결과가 나오면 별것 아닌 일로 밝혀질 것”이라는 분위기다. 달라진 문재인 정부 민정수석실에 대한 검찰의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의혹에 무게를 더하는 정황들에 대한 대답 없이 내부 감싸기에만 급급한 청와대의 대응이 계속되면 막연했던 신뢰마저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