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예 사회부 기자
공문을 받기 하루 전날 A 변호사는 B 씨에 대한 경찰 조사에 참여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농지에 폐기물을 불법 매립한 혐의로 B 씨를 수사하고 있었다. 경찰관은 B 씨가 운영하던 폐기물 업체의 경영 구조를 물었다. A 변호사는 피의자 대신 답했다. 그러자 경찰관은 구두 경고를 했다. 몇 시간 뒤 A 변호사는 조사실을 떠났다가 껌을 씹으며 다시 돌아왔다. 이때도 담당 경찰관이 지적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경찰관은 A 변호사에게 공문을 보낸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런 이유로 변호사를 조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한 건 변론권을 부당하게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현행법과 규칙을 보면 경찰관은 변호인이 신문을 방해하거나 수사 기밀을 유출하는 등 수사에 현저히 지장을 줬을 때에만 변호인 입회를 금지할 수 있다. A 변호사는 수사를 방해하지 않았는데도 경찰관이 마음대로 조사 참여를 제한했다는 게 변협의 판단이다. 변협은 3일 경찰청에 관련자를 징계해 달라고 요청했다.
C 변호사는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수백억 원대 사기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를 변호하면서 조사 내용을 기록했다. 그러다가 경찰관한테서 “메모하지 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D 변호사는 지난해 초 경기 고양시 일산서부경찰서에서 경찰관에게 강압적인 발언을 들었다며 인천지방변호사회에 진정서를 냈다. 경찰관이 조사를 시작하면서 변호인에게 “피의자 대신 대답하면 안 된다. 알았다고 대답하라”며 세 차례나 다그쳤다는 것이다.
“사건과는 관계없는 변호인의 개인적 자질 때문에 입회를 제한했습니다.” A 변호사의 조사 참여를 제한했던 경찰관은 본보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런 해명에는 변호인의 조사 참여를 경찰관이 마음대로 제한할 수 있다는 사고가 담겨 있다. 수사기관의 조사 과정에 변호인 참여를 제한하는 건 헌법에 보장된 피의자의 방어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경찰청은 일선 경찰관들이 변론권과 방어권의 의미부터 다시 새기도록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인권 경찰’은 헛구호에 그칠 뿐이다.
고도예 사회부 기자 y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