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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 출연 대우재단 설립해 학술총서 760여권 발간… 학문 발전 씨앗 역할

입력 | 2019-12-12 03:00:00

故김우중 전 회장 문화계 발자취
선재미술관-아트선재센터 열어 신진작가 발굴-실험적 전시 시도
아마 3단 실력의 바둑 애호가… 한국기원 총재 맡아 바둑발전 앞장




대우학술총서가 500권을 돌파한 2001년 대우재단과 출판을 대행한 출판사 아카넷 관계자들이 자축하고 있다. 이처럼 방대한 순수 학술총서는 해외에서도 유례가 드물다. 동아일보DB

9일 타계한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문화계에 많은 기여를 한 인물로 꼽힌다. 우선 대우학술총서 발간은 가장 대표적 업적으로 꼽힌다. 고인이 1978년과 1980년 200억 원이 넘는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대우재단은 1983년부터 대우학술총서를 출간하며 ‘학술 분야의 씨앗’으로 자리매김했다. 1983년 ‘한국어의 계통’(김방한 지음)을 처음 낸 이래 지금까지 620여 권이 나왔으며 대우고전총서까지 더해 모두 760여 권의 학술서를 발간했다.

이 총서는 소외됐던 학문 분야를 조명하고 전문용어의 우리말 표현을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총서 자연과학 분야가 1984년 한국출판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재단은 2015년부터 대우휴먼사이언스 시리즈도 발간하고 있다.

재단은 학회와 장학 지원 등 약 2000건의 지원사업을 벌여 왔다. 재단은 대우그룹이 해체된 2000년 이후에도 보유자산 매각 등을 통해 자체 재원을 확보하고 학술사업을 이어왔다. 올해에도 ‘한국도자제작기술사’(방병선) 등 논저 6종과 번역서 1종을 지원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23세에 숨진 장남 선재 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아트선재센터. 새로운 시도와 적극적인 작가 발굴로 한국 미술계에서 비중 있는 미술관으로 자리 잡았다. 아트선재센터 제공

또 고인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장남 선재 씨를 기리기 위해 1991년 경북 경주시에 ‘선재미술관’, 1998년 서울 종로구 율곡로에 아트선재센터를 열었다. 선재미술관은 그룹 해체 후 공매됐고 아트선재센터는 김 전 회장의 부인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79)이 관장을 맡다가 2016년부터 장녀 김선정 관장(54)이 운영하고 있다. 아트선재센터는 김종성 건축가의 작품으로 지상 3층, 지하 3층 건물에 전시장, 극장, 한옥을 갖췄다. 음악 문학 무용 패션 등 여러 장르와 활발하게 협업하는 실험적 전시를 시도하고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데 힘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2012년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DMZ)에서 전쟁의 상흔과 분단의 의미를 짚으며 국내외 작가 11팀이 참여한 ‘리얼 DMZ프로젝트 2012’전은 큰 주목을 받았다.

김 전 회장은 바둑계의 은인이라고 할 만하다. 아마 3단의 애기가였던 그는 1983년 한국기원 2대 총재로 취임하며 바둑계 발전에 앞장섰다. 당시 기전 상금만으로는 생활할 수 없었던 프로기사들을 대우그룹 계열사 등에 지도사범으로 취업시켜 바둑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동양증권배(1988년)와 진로배(1992년) 등 세계 기전 창설에 산파역을 맡으면서 바둑계를 질적, 양적으로 발전시켰다. 이런 뒷받침은 한국 바둑이 1990년대 세계 바둑을 석권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또 서울 종로구 관철동 한국기원 회관이 비좁다는 바둑인들의 건의에 따라 성동구 홍익동 건물을 희사해 1994년 9월 한국기원이 이전할 수 있도록 했다. 김 전 회장은 장거리 해외 출장을 갈 때 프로나 아마 강자를 대동해 기내에서 수담을 즐겼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김 회장은 법정 스님과도 인연이 깊었다. 그는 장남이 교통사고로 숨졌을 때 법정 스님의 위로를 받고 삼청동 법련사를 개축한 뒤 아들의 위패와 영가를 봉안했다.

조종엽 jjj@donga.com·손효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