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중심 스마트 시티] <중> 네덜란드 ‘마리네테레인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내항에 조성된 다리 ‘보드워크’. 보드워크는 배가 항구에 들어올 때 덩달아 들어오는 오염물질이 내항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는다. 서울주택도시공사 제공
○ 주민들이 나서 도시 문제 해결책 모색
현재 암스테르담은 도시 전체가 거대한 스마트시티 실험장이다. 2009년 암스테르담시청과 기업, 학계 등은 스마트시티를 구현할 암스테르담 스마트시티 플랫폼(ASC)을 만들었다. 전문가, 시민 등 6800여 명이 ASC에 모여 디지털시티, 시민과 생활, 에너지, 순환도시, 이동성, 거버넌스와 교육 등 6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암스테르담에만 40개가 넘는 리빙랩 시설이 설립돼 있다. 정부가 세운 리빙랩 건물에 스타트업 등이 정부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수익을 내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프로젝트 주제에 따라서 스타트업이나 연구자들이 뭉쳤다가 흩어지기도 한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동쪽으로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리네테레인 암스테르담’은 대표적인 리빙랩 중 하나다. 해군기지였던 건물에는 도시 문제 해결과 관련해 스타트업, 전문가 등이 입주해 보건, 주택, 교통, 에너지 등 당면한 여러 도시 문제를 해결한다. 난시 지컨 스마트시티 커뮤니티 매니저는 “시민들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기술 실증실험이라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상향식으로 아이디어가 모아지는 게 바람직한 스마트시티의 미래”라고 말했다.
○ 적정 기술 적용해 ‘생활 밀착형’ 문제 해결
마리네테레인 암스테르담 인접 내항에는 ‘보드워크’가 놓여 있다. 보드워크는 내항을 가로질러 마리네테레인 구역을 오갈 수 있는 길이 160m, 폭 2.5m의 다리다. 철근과 목재 등을 재활용해 만들었다. 10m가량의 다리 모듈을 조립해 지그재그 모양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언제든 다리 모양이 바뀔 수 있다. 보드워크는 배가 항구에 들어올 때 덩달아 들어오는 오염물질이 내항으로 넘어오는 것도 막는다. 이 다리도 리빙랩에 입주한 스타트업이 개발했다. 마리네테레인 암스테르담에 입주한 기업, 단체들은 주로 생활밀착형 실험을 진행한다. 교통카드와 연계된 전기자전거,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음식점, 자연친화적 맥주를 주조하는 공장, 짐승의 배설물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온실 등의 실험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보드워크를 통해 내항을 건너가면 2층짜리 건물 ‘빌딩 002’의 푸른 지붕이 보인다. 옥상에는 다양한 작물을 빼곡하게 심어 놓은 작물 재배 프로젝트 ‘스마트루프 2.0’이 진행되고 있다. 옥상 바닥에 설치된 50여 개의 자동센서가 작동해 식물에 물 공급이 필요하다는 것을 감지하면 미리 저장해둔 빗물을 식물에 주면서 건물의 온도를 낮춘다. 프로젝트는 인근 호텔 식당이 제안해 진행됐다.
입주 기업인 스타트업 ‘티앱(t.app)’은 행인들의 이동 경로 정보를 수집해 각종 도시 문제를 해결할 엑셀 프로그램과 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씨티엑셀(citixl)’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도시 곳곳에 사물인터넷을 설치하고 각종 정보를 모아 도시 현안을 해결한다. 티앱의 톰 반판아르만 디렉터는 “특정 사회 문제와 관련해 정부와 시민이 원하는 방향은 다를 때가 많다”며 “양쪽 모두 만족할 합리적인 대안을 찾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입주 기업, 단체 등은 해외 도시의 문제점도 살핀다. 입주 스타트업 중 하나는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에 대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타이베이 거주 정부 관계자와 시민단체, 기업인 등을 조사한 결과 ‘부동산’을 가장 큰 문제로 지목했고 2012∼2018년 타이베이의 주택 관련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해결책을 찾았다. 주택 공유 플랫폼인 에어비앤비 운영자의 80%는 집을 2채 이상 갖고 있었고 상위 20%는 10채 이상을 보유했다. 다주택자 대부분은 중국 국적자였다.
▼ 폐선 17척이 사무실-공연장-카페로 변신 ▼
폐조선소 활용한 ‘드쾨블’의 도시재생
오염된 토지는 식물 심어 자연정화… 사무실엔 물 없는 퇴비 화장실 설치
오염된 토지는 식물 심어 자연정화… 사무실엔 물 없는 퇴비 화장실 설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폐조선소 부지에 조성된 ‘드쾨블’. 드쾨블은 모래, 자갈, 조개껍데기 등을 활용한 필터로 생활폐수의 오염물질을 걸러내고 오수 배출을 최소화하고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 제공
2014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북부 ‘드쾨블’이 사무실 입주자를 모으려고 내건 광고 문구 중 하나다. 드쾨블은 폐조선소 부지 1250m²에 폐선 17척을 모아 놓고 폐선 내부를 개조해 만든 사무실 등 복합시설이다. 당시 입주자가 모이지 않아 파격적인 임대료를 제시했지만 단 2개 회사만 1유로를 내고 들어왔다. 현재 드쾨블의 임대료는 1m²당 65유로(약 8만5000원)로 올라 일반 사무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드쾨블 관계자는 “짧은 기간 임대료가 크게 오른 이유 중 하나는 이곳에서 진행 중인 다양한 도시재생 실험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라며 “도시재생 실험을 통해 궁극적으로 지속 가능한 스마트시티를 구현하려고 입주한 기업, 단체들이 많다”고 말했다.
드쾨블은 1920∼2000년에는 조선소였다. 조선소가 문을 닫은 뒤 10년 넘게 방치됐던 부지를 암스테르담시청이 시민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2012년 공모를 통해 ‘스페이스&매터’ 등 건축가 그룹이 리모델링 사업을 맡았다. 암스테르담시청은 사업비 25만 유로를 지원하고 추가로 20만 유로 대출에 대한 보증도 섰다. 저렴한 임대료 덕에 창업자, 친환경 컨설팅 기업 등 도시 전문가들이 모였다. 입주자인 컨설팅업체 메타볼릭의 마르크 퀼스돔 디렉터는 “암스테르담 북부는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한다. 드쾨블의 성장과 함께 지역경제도 활기를 되찾았다”며 “커뮤니티에 어울릴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면 누구든 드쾨블에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드쾨블 화장실에서 모은 배설물은 작물 재배에 필요한 퇴비로 쓰인다. 17개의 보트 사무실은 모두 물을 사용하지 않는 퇴비 화장실을 갖췄다. 마른 퇴비를 만들고 소변에서 인산염을 뽑아 비료로 만든다. 퇴비에서 병원균이나 금속 성분 등을 걸러낸 뒤 온실로 보내 채소 재배에 활용한다. 카페와 음식점의 주방에서 쓴 물은 ‘염생식물 필터’를 통해 정화한다. 모래, 자갈, 조개껍데기 등을 활용한 필터가 고체 오염물을 걸러낸다. 또 질소, 인 등은 유기물을 흡수하는 식물을 활용해 걸러내고 정화된 물은 그대로 땅으로 흘려보낸다. 사무실을 운영하는 전기는 태양에너지에서 얻는다. 배 지붕마다 얹어진 150개가 넘는 태양광 패널에서 매년 3만6000kW의 전력을 확보한다. 각 사무실은 난방펌프와 열 교환기 등을 갖춰 열손실을 최대한 막고 있다.
암스테르담=홍석호 기자 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