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 첫 ‘인류세’ 심포지엄 열려
경기 포천시 야산에 불법으로 버려진 쓰레기가 쌓여 있다. 플라스틱과 콘크리트 등 인류 문명에 의한 폐기물이 퇴적층에 영향을 미치는 시점을 ‘인류세’라는 별도의 지질시대로 구분하자는 제안이 있다. 포천=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일부 학자는 여기에서 더 세분화해 인류가 현재 ‘인류세’라는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인류가 각종 자원을 사용하고 플라스틱과 중금속 폐기물을 지층에 남기기 시작하면서 지구에 미친 악영향을 별도의 지질시대로 구분해 경각심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2000년대 들어 더욱 확산되면서 학계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졌으나 아직 지정은 되지 않은 상태다. 인류세 시작 시점을 두고는 여전히 이견이 많지만 플라스틱과 콘크리트가 퇴적층에서 발견되기 시작한 1950년대를 시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학설이 가장 힘을 얻고 있다.
주로 과학자들이 주도하던 인류세 논의는 최근 경제학과 사회학, 인류학 등 사회과학과 인문학으로도 확장하고 있다. 이달 10, 11일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KAIST 인류세연구센터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개최한 국제 인류세 심포지엄에 모인 전문가들은 “인류세가 다른 분야의 비판과 논의를 통해 더 정교해지고 풍성해지는 융합 연구 단계에 돌입했다”며 “인류가 직면한 기후변화 등 생태적 사회적 위기를 이해하고 극복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류학과 정치학도 인류세 논의에 가세했다. 인류세라는 말은 하나지만 지구 각 지역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인류세의 영향은 모두에게 다른 만큼 현장의 경험을 전파하고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지적이다. 제이미 로리모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인류세는 장소와 사람에 따라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며 “하나의 단일한 시각으로는 분명히 존재하는 차별성을 담아낼 수 없다”고 말했다.
아궁 와다나 인도네시아 가드자마다대 교수는 수도 이전 논의 과정에 인류세가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인도네시아는 수도를 자카르타에서 열대우림이 살아 있는 보르네오섬으로 옮기기로 8월 말 발표했다. 심각한 환경오염과 인구 과밀, 개간, 산림 파괴로 생태적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인류세적인 영향이 수도 이전이라는 정치적 결정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인류세에 관한 학제 간 융합연구를 통해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동력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테펀 교수는 “지구는 지금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임계폭풍’ 속으로 점점 다가서고 있다”며 “서식지를 스스로 파괴하는 현재의 ‘약탈적 자본주의’에 대항하고 효율보다는 공평함을 중시하는 경제학, ‘삶’ 중심으로 시스템을 재편하려는 지구과학을 통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