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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시에서 혼자 살고 있는 A 씨(97)는 셋째 아들 B 씨(55)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 소송을 벌이고 있다.
걷기 힘들 정도로 쇠약한 노인이 강원 춘천지방법원까지 오가며 힘겨운 법정 싸움을 벌이는 이유는 자신이 죽어 묻힐 땅을 되찾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상황은 좋지 않다. 1심 재판부는 A 씨의 청구를 기각했고 A 씨는 항소해 2심이 진행 중이다. A 씨는 여기에서 지더라도 대법원까지 가겠다는 각오다.
A 씨의 사연은 2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 씨는 1998년 1월 B 씨에게 강원 평창군 용평면의 임야 1만6264㎡를 증여했다. 이 땅은 선산으로 A 씨의 아내가 이 곳에 묻혀있다. A 씨에 따르면 증여의 조건은 이 땅이 선산인 만큼 절대 팔지 않고 자신을 잘 부양한다는 것이었다.
A 씨는 B 씨가 실거래가보다 턱없이 낮은 가격에 C 씨에게 땅을 판 것은 자신에게 돌려주기 않기 위해 위장 매매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땅은 2012년 채권최고액 1억800만 원에 한 은행에 근저당권이 설정됐던 적이 있다. 이 근저당권은 B 씨가 C 씨에게 땅을 넘긴 뒤인 2014년 11월 해지됐다가 2015년 8월 채권최고액 5000만 원에 다시 근저당권이 설정됐다.
11일 춘천지법에서 열린 재판에서 판사가 C 씨에게 땅을 되팔 수 있는지 의향을 물었더니 그는 “10억 원이면 팔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동안 돈을 들여 산을 깎고 하우스 시설도 설치해 가치가 높아졌다는 주장이지만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힌 셈이다.
법원은 1심 선고 당시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증여 당시 피고가 원고에게 이 사건 토지를 타인에게 매매하지 않기로 약속하였다거나 이 사건 증여계약이 원고에 대한 부담을 조건으로 하는 부담부 증여계약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A 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증여 당시 약속을 입증할 만한 각서를 쓰거나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탓이다.
A 씨의 법률대리인은 “A 씨의 사정이 딱하기는 하지만 이미 땅의 소유권이 아들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이를 돌려받기는 어려운 형편”이라며 “땅 주인은 매매가로 턱없이 높은 금액을 제시해 조정도 힘들다”고 말했다.
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