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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고 듣고 말하기[김창기의 음악상담실]

입력 | 2019-12-14 03:00:00

<90> 김광석의 ‘잊혀지는 것’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유명인들이 많았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성취와 높은 가치관에 관련된 좌절로 보이지만 대부분의 자살 원인은 이해받지 못하는 고독과 고립감, 오해받거나 강요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한 분노 때문이죠. 그런 극한의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감정적으로 굳게 믿는 정신건강학적 질환 상태나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자살이 일어납니다.

고 임세원 교수는 자살 예방을 위해 헌신했던 분입니다. 그분의 자살 예방 프로그램의 핵심은 함께 ‘보고 듣고 말하기’였습니다. 자살을 암시하는 언행, 상황적 신호들을 잘 보고, 자살과 죽음의 이유와 삶의 이유를 묻고 들은 후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대화를 가르치는 교육 시스템이죠.

소중한 사람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을 막으려면 곁에 함께 있어줘야 합니다. 꺼지라고 해도 묵묵히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그가 보내는 신호들을 기다려야 하죠. 그 다음 지지적인 태도로 자신의 속마음을 말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먼저 들어야 하죠. 들으려면 신뢰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충분히 듣고 난 후 그들의 논리보다는 감정을 공감하고 감정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야 합니다. 감정이 풀리면 꼬였던 논리는 저절로 풀리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늘 논리를 말합니다. 우리도 감정으로 살아가지만 감정보다는 논리를 말하기가 더 쉬우니까요.

‘보고 듣고 말하기’는 정신치료의 가장 큰 치료도구인 긍정적 전이의 발전 단계와 같습니다. 먼저 진지하게 상대를 알려고 노력하려면 보고 들어야 하죠. 그것을 잘하면 상대는 치료자를 좋은 사람,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믿는 합일감(kinship) 혹은 거울 전이를 갖게 됩니다. 그 관계가 지속되면 마음도 좋고 현명하기까지 한 사람이라 믿는 이상화(idealization) 전이가 싹틉니다. 그 과정이 있어야 드디어 치료자의 말을 듣게 되죠.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았던 상식적인 이야기를 말입니다. 그 다음에야 치료자에게 인정받거나 치료자처럼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인정(validation) 전이 단계에 들어갑니다. 비로소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행동을 하게 되죠.

자살은 조금 더 인내하는 관심과 애정만 있으면 예방할 수 있습니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을 이해해주고 위로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원하고 있으니까요. 우리의 소중한 사람에게 우리가 서로의 치료자가 돼야 합니다.

‘잊혀지는 것’은 제가 사랑과 인생을 다 이해한다고 착각하던 스물네 살 때 만든 노래입니다. 맞춤법도 몰랐으면서. 죽은 광석이가 불러줘서 요즘도 가끔 듣게 되는 곡인데, 들으면 어린 시절의 객기를 직면하게 돼 너무 창피합니다. 또 소중했던 사람과 제대로 보고 듣고 말하지 못했었다는 죄책감이 밀려와 괴롭죠. 인간은 누구나 죽고 잊히지만 우리를 소중하게 여겼던 극소수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기억으로 좀 더 오래 살죠. 서로를 더 잘 알아서 더 잘 기억하기 위해, 보고 듣고 말해야겠습니다.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