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김광석의 ‘잊혀지는 것’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고 임세원 교수는 자살 예방을 위해 헌신했던 분입니다. 그분의 자살 예방 프로그램의 핵심은 함께 ‘보고 듣고 말하기’였습니다. 자살을 암시하는 언행, 상황적 신호들을 잘 보고, 자살과 죽음의 이유와 삶의 이유를 묻고 들은 후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대화를 가르치는 교육 시스템이죠.
소중한 사람이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을 막으려면 곁에 함께 있어줘야 합니다. 꺼지라고 해도 묵묵히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그가 보내는 신호들을 기다려야 하죠. 그 다음 지지적인 태도로 자신의 속마음을 말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먼저 들어야 하죠. 들으려면 신뢰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충분히 듣고 난 후 그들의 논리보다는 감정을 공감하고 감정에 대해 함께 이야기해야 합니다. 감정이 풀리면 꼬였던 논리는 저절로 풀리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늘 논리를 말합니다. 우리도 감정으로 살아가지만 감정보다는 논리를 말하기가 더 쉬우니까요.
자살은 조금 더 인내하는 관심과 애정만 있으면 예방할 수 있습니다.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을 이해해주고 위로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원하고 있으니까요. 우리의 소중한 사람에게 우리가 서로의 치료자가 돼야 합니다.
‘잊혀지는 것’은 제가 사랑과 인생을 다 이해한다고 착각하던 스물네 살 때 만든 노래입니다. 맞춤법도 몰랐으면서. 죽은 광석이가 불러줘서 요즘도 가끔 듣게 되는 곡인데, 들으면 어린 시절의 객기를 직면하게 돼 너무 창피합니다. 또 소중했던 사람과 제대로 보고 듣고 말하지 못했었다는 죄책감이 밀려와 괴롭죠. 인간은 누구나 죽고 잊히지만 우리를 소중하게 여겼던 극소수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기억으로 좀 더 오래 살죠. 서로를 더 잘 알아서 더 잘 기억하기 위해, 보고 듣고 말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