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금융권 친문 인맥 해부 ●관료+대선캠프 출신=금융공기업 수장? ●천경득-유재수 입김 밝혀지면 2차 충격 영향권 ●금융공기업 후임 인사 앞두고 ‘낙하산’ 논란 또 일어
유재수 전 부산 경제부시장(구속)과 천경득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의 감찰 무마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금융권의 친문(친문재인) 인맥들과 이들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유 전 부시장은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 파견돼 현 문재인 정부 인사들과 친분을 유지해온 인물이다. 그는 2017년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 재직 당시 KDB산업은행 등 국책은행권 인사들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 전 부시장에 대한 감찰 중단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 천 행정관은 2012년 문재인 대선캠프 펀드운영팀장을 맡았다 총무비서관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의 변호사로, 유 전 부시장과 함께 금융위원회 인사를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천 행정관은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함께 2012년 담쟁이포럼 회원으로 활동했다. 두 사람은 서울대 경제학과 동문이다. 담쟁이포럼은 문재인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외곽 단체로, 지난해까지 장관 7명을 배출했다.
검찰 안팎에선 대선 과정에서 기여도를 인정받은 인사들이 금융권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이번 감찰 중단 의혹 사건이 불거졌다고 보는 이가 많다. 즉 담쟁이포럼 회원이거나 그들의 후광 효과를 등에 업은 세력이 자신들이 원하는 인물들을 금융권 요직에 중용하는 과정에서 파열음이 일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책은행에는 친문 인사가 얼마나 포진해 있고, 유 전 부시장이나 천 행정관과 어떤 관계를 유지해왔을까.
○ 관료의 전유물 돼가는 금융공기업
지난해 6월 취임한 윤대희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의 경우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대선후보 경제정책자문단에서 활동한 인연이 있다. 더욱이 이 회장은 노무현 정부 때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고, 윤 이사장은 대통령비서실 경제정책수석비서관과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했다. ‘관료+캠프 출신=금융공기업 수장’이라는 공식이 생겨날 만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금융공기업도 ‘낙하산’ 논란을 피하고자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를 구성해 공모 절차를 거치는 게 일반화됐다. 청와대 등 권력 핵심부가 특정 후보의 임명에 관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객관적인 인선 시스템을 별도로 구축한 것이다. 일례로 한국예탁결제원(예탁원)의 경우 이사회에서 후임 사장 선출을 위한 임추위를 구성한다. 예탁원 임추위는 비상임이사 4명과 외부 인사 3명으로 구성된다. 이후 사장 공모 공고를 내고 임추위에서 면접 등을 통해 후임 사장 후보를 선출한 뒤,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승인되면 금융위원장이 임명 제청을 통해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이 같은 인선 시스템만 놓고 보면 청와대나 권력실세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후보 내정설 등이 흘러나오는 등 ‘낙하산’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금융공기업은 대선캠프 출신 등이 대거 진입해 정권의 전리품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관료 출신의 금융공기업 진출이 두드러진다. 방문규 한국수출입은행장은 기획재정부 제2차관, 보건복지부 차관 출신이고, 정윤모 기술보증기금 이사장은 중소벤처기업부 기획조정실장, 위성백 예금보험공사 사장은 기획재정부 국고국장 출신이다.
임기 만료를 앞두고 금융공기업 인사가 다가오자 또다시 ‘캠프’ 또는 ‘관료’ 출신 인물들의 하마평이 무성해지고 있다. 특히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경우 기획재정부의 전유물이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임추위를 구성해 공모 절차를 진행하고 있지만, 일찌감치 문성유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이 유력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 문창용 현 사장 역시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출신이다. 그러나 김근익 금융정보분석원 원장이 캠코 사장 후보로 거론되는 등 막바지 물밑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양상이다.
이병래 예탁원 사장 후임으로 금융위원회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이명호 수석전문위원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또한 유광열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과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 원장의 이름도 거론된다. 결국 이번에도 예탁원은 후임 사장에 내부 승진보다 관료나 정치권 출신 인사가 낙하산으로 임명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한국예탁결제원지부는 “신임 사장 자리는 퇴직 관료의 전유물이 돼선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김도진 IBK기업은행장 후임으로 관료 출신이 거론되자 기업은행 노조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재무부 출신인 윤용로 전 행장 이후 조준희, 권선주, 김도진 행장까지 3연속 내부 출신 인사가 행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러다 최근 김 행장 후임으로 청와대 수석 출신의 외부 인사 임명 가능성이 제기되자 노조가 강력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 기업은행의 4연속 내부 행장 배출의 꿈
그런가 하면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금융공기업 사장 등이 조기에 사퇴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총선 출마가 가장 유력한 이는 이정환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장이다. 이 사장은 2012년 총선 때 민주통합당 후보로 부산 남갑에, 2016년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부산 남갑에 출마한 바 있다. 만약 이 사장이 내년 총선에 도전하려면 늦어도 총선 90일 전인 내년 1월 중순까지는 사장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번 감찰 중단 의혹 수사에서 지금의 국책은행 수장들이나 금융공기업 인사들이 유 전 부시장과 천 행정관의 ‘입김’에 의해 임명된 사실이 밝혀질 경우 금융권도 2차 충격파를 면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18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