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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성 없는 트럼프 탄핵… 美 민주당, 대선 겨냥해 ‘자격 미달’ 쟁점화[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19-12-16 03:00:00

美 탄핵정국 누가 마지막에 웃나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12일 하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펠로시 의장은 이날 하원 법제사법위원회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토론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법사위는 이후 13시간의 마라톤 토론 끝에 다음 날인 13일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워싱턴=AP 뉴시스

최지선 국제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역사상 세 번째로 하원에서의 탄핵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원 법사위는 13일(현지 시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주에 민주당이 과반인 하원 전체 표결도 무난히 통과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하원 탄핵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탄핵안은 내년 초쯤 상원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정말로 대통령직에서 쫓겨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과 달리 상하 양원제 시스템을 운영하는 미국은 상원이 탄핵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탄핵되려면 상원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현재 상원은 공화당이 53석으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민주당은 왜 반년 가까이 걸릴 지루한 진흙탕 싸움을 시작한 걸까.

○ ‘쇼’라지만 민주당엔 남는 장사

민주당이 탄핵 조사를 밀어붙인 건 결국 트럼프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한 목적보다는 내년 대선과 상·하원 선거를 위한 전략적 접근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원을 이끄는 민주당은 내년 선거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 ‘문서(탄핵안)’가 생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리 기행을 일삼아도 엄연히 선거를 거쳐 선출된 1인자다. 200년 넘는 민주주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에서 대통령 탄핵 조사가 개시된 건 4번뿐이며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되는 건 3번째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탄핵을 앞두고 사임했다. 하원 탄핵안 통과는 그 자체로 역사에 남을 일이다.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을 ‘자격 미달 대통령’으로 공격할 명분을 얻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캘리포니아)은 9월 탄핵 절차를 개시하기 전 막판까지 망설였다. 역풍을 우려한 탓이다. 1998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 탄핵 때 야당이던 공화당이 선거에 패배한 역사가 있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은 (부인인) 힐러리의 문제일 뿐, 미국 국민의 문제는 아니다”라는 여론이 확산됐다. 결국 집권당인 민주당이 이례적으로 중간선거에서 하원 의석수를 늘렸다. 펠로시 의장은 이 같은 역풍이 재연될까 염려했다. 하지만 표심 이반은 나타나지 않자 자신감을 얻고 탄핵을 추진한 것.

가장 큰 소득은 부동층에게 “트럼프가 선을 넘었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다. 탄핵 결과와 무관하게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역(treason)’ 프레임을 씌울 수 있게 됐다. 국가 안보와 애국을 중시하는 미국 유권자들의 성향상 외국을 끌어들여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 했다는 사실 자체가 큰 결격사유로 비칠 수 있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사안은 부동층이 ‘트럼프가 정말로 외국에 나라를 팔아먹었는지’ 생각해보게 할 만한 중대한 이슈”라면서 “민주당이 역풍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작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 ‘약한 탄핵안’에 여론 촉각

민주당이 유리한 위치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역사상 가장 약해 빠졌다”고 비판한 탄핵안이 민주당의 약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탄핵안에는 핵심 쟁점이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뇌물·강요죄, 즉 ‘보상’에 해당하는 ‘퀴드 프로 쿼(quid pro quo)’ 여부가 명시되지 않았다. 뇌물죄는 미국 헌법에서 규정하는 주요 대통령 탄핵 사유다. 적용된다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탄핵 사유로 인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하원은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했다.

그 대신 탄핵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대 범죄와 비행(high crimes and misdemeanors)’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권력 남용’과 ‘의회 방해’를 구체적 사유로 들었다. 뇌물죄에 대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조 바이든 전 부통령 관련 수사를 요구하며 직·간접적으로 군사원조 집행을 조건으로 달았다가, 폭로될 상황에 직면하자 원조를 제공했다고 명시했다. 즉, 권력 남용은 사실이나 뇌물죄에 해당하는 범법 행위가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았음을 일정 부분 인정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안에 구체적 범죄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미국 역사상 가장 가볍고 약해 빠진 탄핵안”이라고 비난했다. 구체적 혐의도 찾지 못한 민주당의 탄핵 시도는 ‘정치적 광기’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이를 캐치프레이즈로 이용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애초에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탄핵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의 저명한 형사소송법학자이자 진보 인사인 앨런 더쇼비츠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달 11일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행위가) 중범죄는커녕 경범죄도 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적 이득을 위해 자신의 외교 정책 능력을 이용한 것은 다른 역대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다만 정치적 죄(political sin)가 될 뿐”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 미국서 탄핵은 ‘정치 재판’

최종 탄핵 여부는 상원 표결에 달렸다. 미국에서는 탄핵안을 소추하는 한국 국회와 같은 역할을 하원이,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는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상원이 한다. 상원의 표결 과정을 ‘재판’이라고 부른다.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유죄로 판단하면 탄핵된다. 미국의 탄핵이 ‘정치적 재판’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향후 상원은 의원을 선정해 심리를 진행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상원 심리에 출석해 증언할 가능성도 있다. 심리 후 상원 전체 표결을 거쳐 탄핵 여부가 결정된다. 통상 상원의 탄핵 심리와 판결 절차는 1, 2개월가량 소요된다.

탄핵안 통과 이후 상황도 한국과 차이가 있다. 미국은 최종 탄핵 여부가 결정되기 전까지 대통령이 직무를 유지한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면 대통령 직무는 정지된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고건 국무총리 권한대행 체제에 돌입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도 탄핵 소추 의결서를 받자마자 황교안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했다.

현재까지 미국에서는 최종적으로 탄핵을 통해 파면된 대통령은 없다. 닉슨 전 대통령은 하원 표결 전 사임했다. 앤드루 존슨,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탄핵안은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에서 부결됐다. 탄핵 여부를 의회가 결정하는데도 미국에서 아직 탄핵된 대통령이 없는 것은 미국 정계의 남다른 ‘소명의식’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는 “미국 의원들은 소명의식과 직업윤리가 굉장히 강하다. 미국이라는 위대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정치적인 손익분기점이 아니라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는 기본 의식이 있다”고 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민주당이 하원 과반이었지만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상원에선 공화당이 과반이었지만 탄핵안을 부결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WP)는 사설에서 “의원들이 양심에 따라 탄핵 투표에 참가했다. 민주당 일부 의원이 탄핵에 찬성한 것은 미국 민주주의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탄핵 정국 이후 부동층 표심 어디로?

트럼프 대통령 탄핵 재판 심리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화당이 트럼프 대통령 신임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데다 내년 2월부터 본격적인 2020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12일 폭스뉴스에 “대통령이 직에서 쫓겨날 가능성은 0%”라고 말했다. 탄핵 부결 가능성이 커서 시간을 끌면 유권자의 피로감이 높아진다는 양당의 정치적 계산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신년연설을 하는 2월 5일 이전에 표결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역풍’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탄핵안 상원 부결 이후 오히려 지지율이 높아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도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역풍에 힘입어 17대 총선 과반을 차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 정국에도 자신의 트위터에 경제 성과와 굳건한 지지율을 뽐내고 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9월에 시작된 하원 탄핵 조사가 트럼프 지지층을 결집시켜 재선 후원금 모금에 호재가 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관건은 부동층에 달렸다. 임 교수는 “당 충성도가 높은 미국 유권자 특성상 지금 여론조사는 큰 의미가 없다. 내년 봄 부동층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탄핵 정국의 승자가 가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지선 국제부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