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런던은 지난 700년 가까이 대기오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도시다. 1200년대부터 영국에서 사용된 석탄으로 인해 대기오염이 큰 사회문제였다. 하지만 수백 년 동안 그저 경제 발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지속적인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석탄 사용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기상 조건에 따라 사람들 눈에 보이는 대기오염의 상황은 매년 달랐다. 극심한 스모그 이벤트가 휘몰아친 해도 있었지만 평년 수준의 대기오염 상태를 보이는 기간이 한동안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1952년 12월 5일 평년보다 추운 겨울이었던 런던에 매우 강력한 고기압대가 발생했다. 고기압대에서는 대기 정체, 즉 대기의 수평 순환이 약해지는 현상이 발생해 대기오염 물질이 차곡차곡 쌓이는 환경이 되어 같은 양의 대기오염 물질이 배출되어도 농도가 훨씬 높아진다. 이에 더해 추운 겨울은 대기의 수직 순환이 약해져 대기오염 물질의 농도는 더더욱 높아지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여름은 수직 순환층(혼합고)이 지표에서 약 2∼3km 내외로 관찰되지만 겨울의 경우 1km 내외로 낮아진다. 즉, 같은 양의 대기오염 물질이 배출 생성되어도 겨울에는 농도가 2∼3배가량 높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다. 런던에 찾아온 이 고기압대는 12월 9일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그 기간에 런던 사람들의 석탄 사용으로 생긴 이산화황, 숯 검댕, 일산화탄소가 차곡차곡 쌓였다. 이로 인한 호흡기 질환 사망자 수는 4000명으로 집계됐고, 대기오염으로 인한 간접적인 사망자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길을 건너다가 차에 치이는 것까지 집계한 경우는 1만2000명에 이르렀다. 당시 런던 인구가 약 850만 명인 것을 생각할 때 대형 참사다.
나도 런던 거리를 걸을 때 질소산화물 특유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종종 한국을 방문하면 디젤차가 거의 없는 미국에서는 맡을 수 없는 염소 표백제 같은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데, 이 물질이 질소산화물이다. 학회장에서는 영국 요크대 연구진이 항공 관측 연구를 소개하면서 실제 자동차 회사들이 신고한 질소산화물 배출량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매우 높은 질소산화물이 런던 도심에서 관측됨을 보고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자동차 회사들의 질소산화물 배출량 허위 신고가 이렇게 관측과 모델 연구를 접합해 확인된 것이다.
물론 대기오염의 원인과 그 대처 양상은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속적인 관측과 모델링 연구를 통한 정책의 효과 및 우리가 모르는 부분에 대한 확인 과정은 공통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요크대의 항공 관측 결과가 의미가 컸던 부분은 버킹엄 궁, 국회의사당, 총리 공관 등이 모여 있는 런던의 도심에서 불과 2∼3km밖에 안 떨어진 상공을 저공으로 지속 관측한 결과였기 때문이었다.
2016년 당시 한미 공동 항공 관측을 계획할 때 서울에서 항공 관측이 군사 및 보안 관련 규제로 거의 불가능함을 확인한 아쉬움이 남아 있던 상황에서 요크대 연구팀의 발표를 접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얼마나 더 대기오염이 악화되어야 과학조사에 대한 규제가 풀릴까? 이런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skim.aq.201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