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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 민족’[횡설수설/김광현]

입력 | 2019-12-16 03:00:00


유학이나 장기 출장 등으로 한국에 온 외국인이면 깜짝 놀라는 게 몇 가지 있다. 밤 12시가 넘었는데도 총 칼 맞을 걱정하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는 도심의 안전, 그리고 전화나 인터넷 설치를 신청하면 당일 아니면 늦어도 다음 날이면 깔끔하게 끝내주는 초고속 서비스에 혀를 내두른다. 그중의 백미가 음식 배달 문화다. 24시간 족발 치킨 짜장면 햄버거 피자는 기본이고 한식 일식 중식 양식 등 1시간 내 배달이 안 되는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배달 서비스 앱 1위인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이 독일계 음식배달 서비스 기업인 딜리버리히어로(DH)에 매각된다. DH는 이미 2위 ‘요기요’와 3위 ‘배달통’을 인수한 터라 한국 음식배달업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게 됐다. 음식 가방을 매단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녀서 후줄근해 보일지 모르지만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이 배달 앱에 총집약돼 있다. 음식점 검색 및 추천에서 음성 주문, 결제까지 인공지능(AI)을 통해 해결하고 있고, 자율주행 배달 로봇을 개발해 시험 중이다. 로봇이 사람도 아니고 차도 아니어서 인도로 달려야 할지, 차도로 달려야 할지 제도가 미처 못 따라오고 있는 실정이다.

▷‘배달의민족’ 지분 87%의 인수 금액은 4조8000억 원으로 국내 인터넷기업의 인수합병(M&A) 금액으로 사상 최대다. 최근 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아시아나항공 인수 가격으로 제시한 금액 약 2조 원의 2배를 훌쩍 넘는 금액이다.

▷‘배달의민족’은 익살스러운 이름이다. 배달은 고조선의 다른 이름인 배달(倍達)과 물건을 나르는 배달(配達)의 중의적 표현이다. 오토바이 택배에서부터 새벽 음식 배송까지 배달 문화가 워낙 발달해 있으니 ‘配達의 민족’이란 뜻으로 들려도 이상할 것이 없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에서 배달주문 앱 이용자가 2500만 명, 2010년 시작한 ‘배달의민족’의 누적 주문량은 작년 말 4000만 건을 넘었다.

▷외솔 최현배 선생이 작사한 한글날 노래 1절 첫머리는 ‘강산도 빼어났다 배달의 나라’로 시작한다. 신용하 전 서울대 명예교수 등에 따르면 고조선의 첫 도읍지 ‘아사달’은 ‘밝달 아사달’이라고도 했다. ‘밝달’이 고조선 민족의 상징적 호칭으로 확대되면서 고조선 사람들을 ‘밝달’ 사람이라고 불렀다. ‘밝달’을 한자로 음차 표기한 것이 ‘倍達(배달)’이다. 무일푼으로 음식점 전단 정보를 모아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도 안 돼 수조 원짜리 회사를 만들었으니 이 회사 대표 김봉진 씨와 직원들 역시 진취적인 배달의 자손이라 할 만하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