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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골목서 문화쉼터로 화려한 변신

입력 | 2019-12-16 03:00:00

[스트리트 인사이드]
인천 동구 배다리 헌책방 거리… 헌책방 옆에 신간서점 들어서자 옛 활기
다양한 행사 열려… 카페-수공예점도 입주해 문화향기 물씬




지난달 9일 인천 동구 배다리 헌책방 일대에서 열린 ‘작가들과 함께하는 배다리 헌책축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작가들의 ‘포토 에세이’를 감상하고 있다. 김영국 채널A 스마트리포터 press82@donga.com

13일 경인전철 도원역 입구. 동인천역 방향으로 언덕배기를 내려오면 배다리 철교를 만난다. 철교 밑을 지나 바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헌책방이 모여 있는 ‘배다리 헌책방 거리’가 펼쳐진다. 배다리는 오래전 작은 배가 바닷물이 들어오면 수로를 통해 철교 밑까지 드나들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현재 인천 동구 금창동과 송현동 일대에 해당된다.

○ 숱한 사연이 있는 배다리 헌책방 거리

인천이 고향인 50줄을 넘긴 중년이라면 이곳을 찾아 누렇게 바랜 책갈피를 넘기며 윌리엄 셰익스피어, 레프 톨스토이, 프리드리히 니체 등 대문호의 작품을 사서 읽었을 것이다. 추억이 서린 곳이다.

헌책방은 6·25전쟁 직후인 1953년 폐허가 된 거리에 이동식 리어카 책방이 하나둘 모여 시작됐다. 한때 40여 개에 달하던 배다리 헌책방 거리는 서울 청계천, 부산 보수동과 함께 전국 3대 헌책방 거리로 불렸다. 1980년대 초부터 하나둘 문을 닫았다. 요즘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는 아벨서점, 한미서점, 삼성서림, 모갈1호(옛 대창서림), 나비날다, 커넥터닷츠 등 6개 서점이 운영 중이다. 인천 동구는 “헌책방 몇 곳이 전부였던 배다리에 몇 년 사이 신간 도서를 판매하는 서점까지 생겨나 배다리 반경 2km 주변에 총 11곳(헌책방 포함)이 영업하고 있다”고 밝혔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서 만난 인천 토박이 이정숙 씨(53)는 “드라마 ‘도깨비’, 영화 ‘극한직업’의 촬영장소로 관심을 끌던 배다리에서 요즘 책방 축제, 시낭독회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면서 제2의 부흥기를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성냥박물관 개관 후 문화행사 잇달아

올해 3월 배다리에는 ‘배다리 성냥마을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옛 동인천우체국 자리에 들어선 성냥박물관에는 성냥의 역사와 제조 과정, 성냥이 생활에 어떤 변화를 줬는지를 보여주는 자료 2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성냥박물관이 배다리에 생긴 이유는 1917년 10월 4일 설립된 한국 최초의 성냥 공장인 ‘조선인촌주식회사(朝鮮燐寸株式會社)’가 배다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헌책방을 끼고 있는 배다리 일대는 인천의 대표적인 원도심이다. 최근 문화와 예술의 향기가 넘쳐나는 테마 여행지로 변신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시인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시(詩)였다, 배다리 시(詩)를 들이다’라는 제목의 특별한 문화 행사가 열렸다. 과거 술을 만들던 ‘인천 문화양조장’에서는 ‘시낭독회’가 열렸는데 주민들의 호응이 컸다. 인천 동구는 내년에도 3, 4회 헌책방 일대에서 독서 등 다채로운 문화 행사를 열기로 했다.

화도진문화원도 지난달 9일 ‘작가들과 함께하는 배다리 헌책축제’를 열었다. 이 축제는 작가들이 행사에 참여해 주민에게 책을 헌정한다는 의미인 ‘헌(獻) 책 축제’로 소설가 윤후명, 김진초 등이 작품집에 친필 사인을 해 기부했다.

○ 문화와 예술이 숨쉬는 공간으로 변신

인천 동구는 지역서점 활성화를 위한 조례 등 다양한 지원조례를 만들어 배다리 일대를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공간으로 조성하고 있다. ‘배다리 문화예술의 거리 조성사업’이 내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된다. 헌책방 거리에서 도원역까지 1.8km 거리가 사업구역이다. 이곳에 북카페를 비롯해 갤러리 카페, 수공예 상점, 사설박물관 등 모두 30곳을 입주시킨다는 계획이다. 입주 대상은 문화 예술인, 청년상인, 다문화 상인으로 건물 외관 개선 비용 지원이 이뤄진다. 내년 입주자 선정 뒤 6월경 영업을 시작한다.

전시와 문화, 숙박공간이 한곳에 모인 ‘복합형 게스트 하우스’ 조성 사업도 내년 12월까지 마무리된다. 낡은 숙박업소(여인숙)를 숙박과 다양한 문화 체험이 가능한 복합 공간 게스트하우스로 조성한다. 배다리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 전시와 체험 기회가 펼쳐지고 예술인의 임시 작업 공간 등으로 활용된다. 올 3월 시작한 ‘배다리 역사문화마을 조성사업’도 2022년 12월까지 진행된다.

허인환 인천 동구청장은 “인천의 3·1운동의 발상지인 창영초등학교와 서구식 교육이 처음 이뤄진 영화학당, 헌책방 골목, 한복거리 등 100여 년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살아 있는 박물관이 배다리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며 “배다리 일대를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있는 테마 거리로 만들어 인천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