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일본 도쿄 경제산업성에서 열린 한일 통상당국의 국장급 협의인 ‘수출관리 정책대화’는 일본 측이 한국을 노골적으로 냉대했던 7월 과장급 실무회의와 달리 우호적인 분위기로 시작했다. 회의 시간도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약 7시간이 예정됐지만 오후 8시 18분까지 10시간 18분간 진행됐다.
2016년 6월 이후 3년 6개월 만에 재개된 이날 대화에 이호현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정책국장 등 한국 대표 8명, 이다 요이치(飯田陽一) 경제산업성 무역관리부장 등 일본 대표 8명이 각각 참석했다.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됐고 군사전용이 가능한 제품 및 기술이 해외에 유출되지 않도록 하는 수출관리 체제를 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대화는 24일 중국 청두(成都)에서 열릴 예정인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실시돼 큰 관심을 모았다. 한국 측은 반도체 수출 규제의 완전 철회를 요구했지만 일본 측은 ‘정책대화 재개가 수출관리(수출 규제) 수정(해제)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며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수출 규제 문제는 “애초에 상대국과 협의해서 결정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경제산업성은 올해 7월 고순도 불화수소 등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했다. 한 달 뒤 수출관리 우대 대상인 ‘화이트리스트(그룹A)’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지난달 25일 호사카 신(保坂伸) 경제산업성 무역경제협력국장은 집권 자민당과의 당정회의에서 한국이 그룹A로 복귀하기 위한 3개 조건도 제시했다. 그는 △양국 간 정책대화가 열리지 않아 신뢰관계가 손상된 점 △수출 심사·관리 인원 등 체제의 취약성 △재래식 무기에 전용될 수 있는 물자의 수출을 제한하는 ‘캐치올’ 규제가 미비한 점 등을 거론했다. 이날 정대화를 통해 앞선 두 가지 사안이 논의된 만큼 캐치올 규제만 보완하면 양측이 어느 정도 합의에 이르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회의 분위기가 7월 과장급 실무회의 때와 확연히 달라졌다. 일본 대표단은 회의 시작 6분 전인 오전 9시 54분부터 한국 대표단보다 먼저 입장했다. 수석대표인 정장 차림의 이다 부장은 회의실 출입구에서 한국 대표단을 기다린 후 직접 맞았다. 7월 회의 때 한국 대표단은 정장 차림이었지만 일본 측은 반팔 셔츠 차림이었다. 이다 부장은 이 국장과 가볍게 웃으며 악수했고 이 국장이 “굿모닝”이라고 하자 “웰컴, 플리즈”라고 화답했다.
7월 회의 때 일본 대표단은 한국 측이 입장할 때 자리에 앉은 상태에서 대기했고 한국 대표단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회의실도 의자 등 비품을 쌓아놓은 창고 같은 방에서 달랑 임시 탁자 2개만 붙여놓아 ‘홀대’ 논란이 일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