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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의 날개[임용한의 전쟁史]〈88〉

입력 | 2019-12-17 03:00:00


다리우스 3세를 격파하고 인도를 향하던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의 마지막 영토,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에 위치한 박트리아 지방에 진입했다. 여기서 그는 지금껏 보지 못한 엄청난 산악요새와 마주친다. 아프가니스탄은 지금도 난공불락의 험악한 지형으로 유명하다. 박트리아의 태수 옥시아르테스는 그중 어느 바위산 정상부에 세운 요새 위에 주둔하고 있었다. 고지대는 식량도 잘 상하지 않는다. 그는 3만 명이 2년을 먹을 수 있는 식량까지 비축하고 있었다. 천하의 알렉산드로스도 그 산을 보더니 여기를 점령하려면 날개 달린 병사가 필요하겠다고 혀를 내둘렀다. 보통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포기를 의미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달랐다. 그는 날개 달린 병사를 찾아냈다. 아니, 창조해냈다.

그가 만든 날개는 막대한 성공보수였다. 대왕은 요새 뒤의 절벽으로 올라갈 자원자를 모집했다. 산을 제일 먼저 오르는 병사 1∼3등에게 10탈란톤의 포상을 약속했다. 당시 이집트 용병 연봉이 10분의 1탈란톤이었으니, 용병 생활 10년 치 수입이었다. 300명의 자원자가 바위에 파이프를 박고, 밧줄을 거는 원초적인 방식으로 암벽 등반에 도전했다. 30명이 추락사했지만 나머지는 절벽에 올랐다. 절벽에 나타난 그리스군을 본 박트리아군은 너무 놀라 전투를 포기하고 항복했다.

에르빈 로멜은 보병학교 교관시절 지휘관이 융통성을 지니고 직관적인 능력을 발휘해 행동하면, 즉 대담하고 창의적으로 행동하면 전력의 열세나 지형의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아무리 지휘관이 창의적이어도 병사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창의적인 행동은 그만큼 위험을 수반한다. 그 위험을 극복하는 방법은 알렉산드로스의 날개, 즉 포상이다. 관료사회는 이상할 정도로 책임 추궁은 강하고 포상은 약하다. 그러니 복지부동, 보신주의가 지배한다. 그래서야 절벽은커녕 실개천도 넘지 못한다. 실패에는 격려를, 성공에는 포상을 하는 것이 선진국의 조건이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