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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원래 하기 싫은 것, 쿨하게 인정하세요[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입력 | 2019-12-17 03:00:00

<92> 공부가 싫다는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영어 학원에 가는 게 너무 싫다고 했다. 부모 말이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너무 하기 싫어한단다. 나는 아이에게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공부나 숙제는 좀 하니?”라고 물었다. 아이는 당당하게 “아니요”라고 답했다. 재미가 없단다. “공부가 재미없지 뭐”라고 말하니, 아이는 “과학이나 음악은 재밌어요, 그래서 저는 그것만 해요”라고 했다. 나는 아이에게 “그렇구나. 그런데 초등학교 다닐 때는 뇌를 발달시키는 시간이라, 편식을 하듯 공부도 편식하면 안 되는데”라고 말했다. 아이는 편식이라는 단어가 귀에 콕 박혔는지, “저 편식은 안 하거든요. 다 잘 먹어요”라고 반박했다. “아니, 편식처럼 어느 과목만 골라 하는 것은 뇌를 균형 있게 발달시키는 것을 방해해”라고 설명해줬다. 아이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엄마가 영어 학원을 가라고 해서 가고는 있지만 영어가 진짜 싫다고 고백했다. 나는 “그래, 영어 공부가 우리말이 아니니까 싫을 수 있어. 근데 영어는 너무 안 하면 두고두고 고생해”라고 했다. 아이는 “왜요?”라고 물었다. “학교에서도 영어 시험을 봐. 대학 갈 때도, 취직할 때도, 승진할 때도 영어 시험을 봐. 미뤄놓고 안 해도 되면 상관없지만 두고두고 해야 하는데, 좀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했더니 아이는 그래도 안 할 거라고 했다.

그래서 “네가 좋아하는 과학책을 읽으려면 영어를 좀 할 줄 알아야 할걸”이라고 했다. 아이는 “왜요?”라고 물었다. 진료실 책장에 꽂힌 전공서적을 보여주며 이것이 다 영어로 되어 있다고 말해줬다. 아이는 번역서를 읽으면 된다고 했다. “번역하는 사람도 이윤을 남기려면 사람들이 많이 읽는 책은 번역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책들은 하지 않을 수 있어.” 그제야 “진짜요?”라고 했다. “억지로 하라고는 안 해. 10년쯤 지나면 동시통역 기계도 나오고 아마 영어를 안 배워도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을 거야. 그런데 네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 건 좀 어려울 수도 있어. 그래서 좀 하라는 거야”라고 말했다.

남자 아이들 중에는 악필이 유난히 많다. 어떤 아이는 자기가 쓴 숫자도 못 읽는다. 계산에 자주 오류가 발생한다. 그럴 때도 똑바로 쓰라고 혼내기보다 이렇게 말해주면 좋다. “네가 어른이 되어서 돈을 많이 벌었어. 중요한 계약을 해야 돼. 중요한 계약은 컴퓨터로 하면 안 되고, 자필로 써야 하거든. 그런데 잘못 써서 상대방이 숫자를 잘못 읽는다거나 실수로 0을 하나 더 붙이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아이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래서 정확하게 쓰라는 거야. 잘못 쓰면 돈을 더 줘야 해.” 이렇게 얘기하면 정확하게 써야 하는 것의 중요성을 조금은 깨닫는다.

아이가 자랄수록 양육에서 공부를 생각하지 않기는 어렵다. 이런 때 아이가 공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 해내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공부가 싫다고 하면, 쿨하게 인정해주어야 한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너는 지금 그런 마음이구나”, 수긍해주면 아이가 덜 발끈한다. 그러고 나서 아이에게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들어 필요성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으면 한다.

아이가 공부를 너무 안 하려고 한다면, “그런데 공부는 다른 아이들도 다 하잖아. 고등학교까지는 전부 다니잖아. 배워야 뇌가 발달하거든”이라고 말한다. 아이가 “그런데 다른 아이들도 다 싫어한다고요”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맞아. 좋아하는 사람이 없지. 노는 것보다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그런데 대부분의 애들은 그래도 참고 하잖아. 네가 이렇게 싫어하는 것은 좀 문제인 거야. 그 이유를 찾아봐야 해”, 아니면 “모든 과목을 100점 맞으라 하는 것도 아닌데, 기본적인 것도 안 하려는 것은 문제야” 정도로 이야기해 주는 것이 좋다. 아이의 생각을 수긍해 주면서 차근차근 설명해 주면 반박을 하다가도 ‘내 생각이 다는 아니네’라는 생각을 한다.

공부를 해야 할 필요성을 너무 비장하게 말하지 말자. 부모가 비장하면 할수록 아이는 공부가 더 무섭다. 부담이 돼 더 하기 싫어진다. 가볍고 짧게 아주 가끔만 그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할 수 있다면 아이들 코드에 맞게 유머러스하게 해주면 더 좋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