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남산 콧물 사건[이재국의 우당탕탕]〈30〉

입력 | 2019-12-17 03:00:00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주말에 일찍 일어나 남산에 올라갔다. 평일에 운동할 시간이 없어서 주말에라도 꼭 남산을 올라가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주중에 쌓인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운동도 되니까. 숨을 몰아쉬며 산을 올라가는데 날씨가 추워서인지 자꾸만 콧물이 흘렀다. 그래서 동네 형처럼 멋지게 한쪽 콧구멍을 막고 ‘팽!’ 코를 풀었는데 젠장, 큰 콧물 덩어리가 내 옷에 묻었다. 그것도 이번에 큰맘 먹고 산 파타고니아 새 재킷에. 내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아이, 씨!”, 욕설이 나왔다. 아! 남의 콧물도 아니고 내 콧물이 내 옷에 묻었는데도 화를 내다니…. 나는 산을 내려오는 내내 내 이기심을 반성했다.

사실, 내 이기심을 반성한 건 이번만은 아니었다. 뭘 해도 되는 일이 없던 20대 후반, 세상에 불만이 많았다. 열심히 글을 쓰고, 다른 사람보다 적게 자면서 글을 썼는데 사람들이 몰라주는 게 서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술 사준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서며 책상 위에 있던 껌 하나를 꺼내 씹었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동안 세상에 대한 불만을 껌에게 화풀이하듯 쫙쫙 씹었고, 단물이 다 빠진 껌을 뱉을 곳을 찾다가 나는 ‘에라 모르겠다’ 아무 데나 껌을 뱉어 버렸다. 그날 친구와 진탕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왔고, 다음 날 아침, 라면을 사러 마트에 가려고 신발을 신었는데 왼쪽 신발에 뭔가 찐득한 것이 붙어 있었다. 뭔가 하고 신발을 들어 보니 밑창에 껌이 붙어 있었다. “아, 젠장!”

또 한번은 운전을 해서 방송국에 가는데 갑자기 목이 칼칼했다. 목 안에 뭔가 이물질이 있는 것처럼 계속 “크르릉” 소리가 나서 기침을 해보니 가래였다. 나는 입안에 있는 가래를 어디다 뱉어야 하나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자동차 창문을 열고 도로에 뱉어 버렸다. 양심에 가책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차 안에 뱉을 수도 없었다. 만약에 차 안에 휴지나 종이컵이 있었다면 거기에 뱉었을 텐데 당시로서는 최선책도, 차선책도 없었기에 난 창문을 열고 도로에 침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방송국에 도착해서 방송을 잘 마치고, 집에 돌아와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는데 내 차 앞 보닛에 누군가 뱉은 가래침이 묻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 “아, 이건 또 뭐야!”

나는 두 번의 사건으로 깨달은 게 있었다. 무슨 일이든 “뿌린 대로 거둔다”는 사실. 내가 아무 데나 껌을 뱉으면 결국 내 발바닥에도 누군가의 껌이 붙고, 내가 아무 데나 침을 뱉으면 결국 내 옷에도 누군가의 침이 묻는다. 오늘 당장 나에게 돌아오지 않더라도, 결국은 돌고 돌아 나에게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 나는 그렇게 깨달음을 얻고 앞으로는 좋은 것만 뿌리고, 좋은 것만 거두며 살자고 다짐했는데, 겨울 남산을 오르다가 다른 사람 콧물도 아니고, 내 콧물이 내 옷에 묻은 걸 보고 화를 내다니, 나는 아직 멀었구나.

주말 남산 콧물 사건 덕분에 올 한 해 나에게 생긴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 좋은 씨앗을 뿌린 만큼 좋은 일이 생겼고, 내가 실수한 만큼 그 대가 또한 나에게 돌아왔겠지. 그래도 다행이다. 콧물 덕분에 2019년 끝나기 전에 돌아보며 반성할 수 있게 됐으니.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