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사실, 내 이기심을 반성한 건 이번만은 아니었다. 뭘 해도 되는 일이 없던 20대 후반, 세상에 불만이 많았다. 열심히 글을 쓰고, 다른 사람보다 적게 자면서 글을 썼는데 사람들이 몰라주는 게 서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술 사준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고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서며 책상 위에 있던 껌 하나를 꺼내 씹었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동안 세상에 대한 불만을 껌에게 화풀이하듯 쫙쫙 씹었고, 단물이 다 빠진 껌을 뱉을 곳을 찾다가 나는 ‘에라 모르겠다’ 아무 데나 껌을 뱉어 버렸다. 그날 친구와 진탕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왔고, 다음 날 아침, 라면을 사러 마트에 가려고 신발을 신었는데 왼쪽 신발에 뭔가 찐득한 것이 붙어 있었다. 뭔가 하고 신발을 들어 보니 밑창에 껌이 붙어 있었다. “아, 젠장!”
또 한번은 운전을 해서 방송국에 가는데 갑자기 목이 칼칼했다. 목 안에 뭔가 이물질이 있는 것처럼 계속 “크르릉” 소리가 나서 기침을 해보니 가래였다. 나는 입안에 있는 가래를 어디다 뱉어야 하나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자동차 창문을 열고 도로에 뱉어 버렸다. 양심에 가책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차 안에 뱉을 수도 없었다. 만약에 차 안에 휴지나 종이컵이 있었다면 거기에 뱉었을 텐데 당시로서는 최선책도, 차선책도 없었기에 난 창문을 열고 도로에 침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방송국에 도착해서 방송을 잘 마치고, 집에 돌아와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는데 내 차 앞 보닛에 누군가 뱉은 가래침이 묻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 “아, 이건 또 뭐야!”
주말 남산 콧물 사건 덕분에 올 한 해 나에게 생긴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 좋은 씨앗을 뿌린 만큼 좋은 일이 생겼고, 내가 실수한 만큼 그 대가 또한 나에게 돌아왔겠지. 그래도 다행이다. 콧물 덕분에 2019년 끝나기 전에 돌아보며 반성할 수 있게 됐으니.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