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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기가 테러 위협이라도 받았나? 가명으로 진술하게…”[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입력 | 2019-12-17 03:00:00

김기현 전 울산시장




김기현 전 울산시장 주변에 대한 경찰수사에는 이상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김 전 시장은 11일 “비서실장이 골프 비용을 자기 돈으로 냈다고 했으면 경찰은 그 말이 맞는지 확인하고 영장을 신청해야 하는 게 상식”이라며 “확인도 없이 영장을 신청하고, 그걸 알고 영수증을 제시하니 수사방해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울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이진구 논설위원

《그는 정말 시장 자리를 도둑맞은 걸까. 지난해 3월 경찰이 울산시청을 압수수색하면서 불거진 경찰의 선거 개입 의혹은 올 3월 이 수사가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서 의심을 더했다. 그리고 당시 울산지방경찰청에 김기현 전 울산시장(60)에 대한 첩보를 내려보낸 진원지가 청와대인 것이 최근 확인됐다. 만약 당시 경찰이 청와대 하명을 받아 야당 소속 현직 시장 측근을 수사한 게 사실이라면…. 세간의 관심을 보여주듯 인터뷰 내내 그의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

―본의 아니게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한나라당 대변인 할 때 기사가 많이 나긴 했는데, 그때는 내가 뉴스의 주인공은 아니었으니까…. 덕분에 백수인데도 엄청 바쁘게 보내고 있다. 지난주에는 거의 매일 울산∼서울을 출퇴근했다. 당 차원의 진상조사도 그렇고 내가 주축이 돼 대응할 수밖에 없으니까.”

―당신에 관한 첩보를 청와대에 제공한 사람이 송병기 현 울산시 경제부시장으로 확인되면서 이 사안이 지금 정국의 핵폭탄이 됐다. 시장 취임 1년 후 당시 교통건설국장이던 송 부시장을 산하 연구원으로 보낸 이유가 뭔가.

“그 자리가 개방형 계약직 자리인데 2015년 7월경에 계약기간이 끝나서 더 연장하지 않은 것뿐이다.” (일을 잘하면 연장할 수도 있지 않나.) “그는 전임 시장 때부터 거의 7, 8년을 그 자리에 있었다. 통상 2년도 오래하는 건데…. 새 피도 필요했다. 시장은 바뀌었는데 아래가 똑같으면 달라질 게 없지 않나. 그래서 시 산하에 있는 울산발전연구원 공공투자센터장으로 보냈다. 지방자치단체가 늘 예산 따고, 쓰고 나눠주기 바쁘지 장기 미래 비전은 잘 고민하지 않는다. 송 부시장이 시에 오래 있으면서 각종 현안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보고 보냈다.”

―원하는 성과가 좀 나왔나.

“나오긴…. 그래도 인력을 사장시키지 말고 활용해보자고 보낸 건데… 단 한 건도 성과가 나온 게 없었다. 1년 넘게 있는 동안 아무것도…. 황당했다. 시 기획조정실을 통해 내라고 했는데 아무것도 안 올라왔다.” (왜 일을 안 한 건가?) “모르지…. 그 뒤의 행적을 보면 뭘 하고 다녔을지 짐작이 가는 거 아닌가. 지난해 당선된 송철호 울산시장이 규정까지 바꿔가며 경제부시장에 임명할 정도니.” (규정을 바꿨다니?) “원래 울산시 경제부시장은 개방형 직위라 공개모집이다. 그걸 송 시장이 별정직으로 바꿨다. 별정직은 공모 없이 시장이 임명하면 된다.” (내부에서 별말이 없었나.) “없긴…. 시 의회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무슨 위인설관이냐며 난리를 쳤는데…. 그래서 무마하기 위해 여기저기 엄청 뛰어다닌 걸로 안다.”

※울산시의 마지막 경제부시장(개방형 직위) 공개모집은 2017년 12월에 있었다. 당시 지원 경력 기준은 1급 상당 공무원은 관련 분야 근무 경력 4년 이상, 2급 상당은 6년 이상이었고, 이듬해 2월 기획재정부 고위공무원 출신인 김형수 씨가 임명됐다. 송 부시장이 재임한 교통건설국장은 3급으로 개방형 공모였으면 자격 미달이다.

―송 부시장은 청와대에 알려준 첩보가 당시 언론을 통해 울산 시민 대부분이 아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검색해도 기사가 잘 안 나온다.

“거짓말이니까…. 첩보 내용 중에서 보도된 기사는 단 한 건도 없다. 울산 시민이 다 알 정도라면 울산경찰청이 모를 수가 없고, 청와대에서 첩보를 내려보낼 필요도 없다. 송 부시장 말이 사실이라면 울산경찰청은 알면서도 수사하지 않았는데, 청와대에서 첩보가 오니 그제야 나섰다는 말밖에는 안 된다.”

※송 부시장이 청와대에 첩보 내용을 알린 것은 2017년 10월경이다.

―작년 당신이 한국당 울산시장 후보 공천을 받던 날, 경찰이 시장 비서실 등을 압수수색했는데 사전에 몰랐나.

“전혀 몰랐다. 그날 행사 때문에 밖에 있었는데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다. 경찰이 압수수색하러 왔다고…. 부랴부랴 들어갔는데 언론에도 미리 알렸는지 이미 사무실 안에 카메라며 사진기자들이 우글댔다. 그 자리에 있어봐야 할 것도 없고, 좋을 것도 없어 다른 사무실에서 진행 상황을 들었다.” (비서실은 무슨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은 건가.) “비서실장이 골프 접대 등을 받고 업체의 납품 편의를 봐 준 게 직권남용과 뇌물수수라는 건데…. 이게 정말 황당하게 전개됐다. 비서실장은 경찰에서 골프는 쳤지만 자기 돈을 냈고, 납품 편의를 봐준 적도 없다고 진술했는데 무시하고 그냥 구속영장을 검찰에 신청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신청했다는 건가.) “그랬다. 지역 신문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는 기사가 나서 알았는데, 황당해서 비서실장이 그 후에 영수증을 찾아서 제시했다. 그랬더니 경찰이 뭐라고 했는지 아나?” (뭐라고 하던가.) “직접 들은 건 아니고 언론에 난 건데 늦게 낸 게 수사방해라고 했다.”

올해 3월 울산지검이 김기현 전 울산시장의 비서실장 박모 씨에게 보낸 직권남용과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불기소 이유 통지문.

※김 전 시장의 비서실장은 자신이 결제한 울산컨트리클럽 결제명세를 검찰에 제출했다.

―선거가 목전이었는데 대응은 어떻게 했나. 가장 중요한 문제였을 텐데….

“대응은 무슨…. 경찰발로 계속 뉴스가 홍수처럼 쏟아지는데 솔직히 하도 많아서 무슨 뉴스가 어디에 났는지 파악도 할 수 없었다. 뉴스는 물론이고 ‘도망간 김기현 시장의 동생을 찾는다’는 허위 비방 현수막까지 걸렸다. 압수수색에 대해서는 황운하 당시 울산경찰청장과 수사담당자들을 직권남용으로 고발했지만 그저 단신으로 한 줄 나고 그만이었다. 건마다 변호사를 선임해 다 고발할 수도 없고…. 변호사를 쓴들 업무도 하고, 선거 준비도 해야 하는 데 언제 그 변호사들을 다 만나겠나. 계속 해명 기자회견만 하면 되레 상대를 도와주는 꼴이고….”

―지난해 울산시장 선거에 대한 무효소송을 내겠다고 했는데, 현행법상 안 되지 않나.

“그래서 먼저 공직선거법의 위헌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헌법소원을 4일 냈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일로부터 14일 이내 선거 소청을 해야만 선거무효소송을 할 수 있다’고 하고 있는데 소청 기간이 너무 짧고, 내 경우처럼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부정행위가 드러나면 소송 자체가 불가능하다. 낙선하고 무슨 정신이 있다고 14일 안에 변호사 선임하고, 증거 수집하고 소청을 하나. 캠프 정리하기도 정신이 없는데…. 왜 14일 이내인지 근거도 없다. 그래서 먼저 소청 기간을 14일로 규정한 것이 위헌이라는 판정을 받고, 그 다음에 선거무효소송을 내려고 한다.” (공천 받던 날 압수수색을 받았는데 그때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이상했지만 증거가 없었으니까. 짐작만으로 내봐야 받아주지도 않았을 테고….”

―설사 위헌 판정을 받고 선거무효소송에서 이겨도 그 사이에 시장 임기는 다 끝날 것 같은데 무슨 실익이 있나.

“선거무효소송은 단심이라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을 거치는 사이에 시장 임기가 끝날 수는 있다. 하지만 내 목적은 선거를 다시 하자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 헌정 질서에 한 번도 없던 선례를 남기고 싶어서다.” (한 번도 없던 선례?)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한 김대업을 기억하나? 선거 직전 검찰이 허위라고 밝혔지만 이미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그 때문에 이 후보는 57만여 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떨어졌다. 김대업은 2년 가까이 실형을 살았지만 이미 정해진 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도 당시 이 후보가 20만 달러를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허위사실로 판명됐다. 이런 행태를 그냥 놔두면 앞으로도 계속 누군가 총대를 메고 일을 저지르고, 감옥 가도 사면해주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걸 막고 싶어서다.”

※설 의원은 2005년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3년, 피선거권 10년 제한 형을 선고받았지만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사면 복권시켰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당신을 편들고 있다고도 한다.

“검찰이 내 편이라면 작년에 경찰이 신청한 시청 압수수색 영장을 왜 받아줬겠나. 기각하지. 그때는 영장 신청을 받아주고 지금은 내 편을 든다? 앞뒤가 안 맞지 않나. 오히려 경찰이 내 수사의 참고인으로 송 부시장을 불러 조사하면서 진술서를 가명으로 받았는데…. 이런 거야말로 확실하게 편들어주는 거다. 송 부시장이 참고인 진술을 하면서 테러의 위협이라도 느꼈단 말인가? 그래서 FBI나 CIA의 증인보호 프로그램 수준의 신변보호 요청을 경찰에 했단 말인가? 가명으로 진술서를 받아주다니…. 자기 스스로 울산시민 대부분이 아는 내용이라 하지 않았나.”

※‘가명조서·신원관리카드 작성 및 관리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범죄신고자법에 따라 살인 강간 등 신고자에 대한 보복 위험이 큰 범죄의 경우 가명으로 조서를 쓸 수 있다. 또 필요에 따라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검사나 경찰의 판단에 따라 쓸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지침에 따라 실명 미기재 사유보고서 원본을 검찰청에 제출하는 등 절차가 까다롭다. 송 부시장은 진술서를 가명과 실명 모두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가명 작성의 사유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내년 총선에 출마한다고 하던데….

“한다. 꼭 한다. 그래서 내 손으로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특검(특별검사)을 추진하든, 국정조사를 하든…. 앞서 말한 대로 선거무효소송을 하려면 선거가 끝난 뒤 14일 이내에 해야 하는 공직선거법도 고치고….” (마음은 알겠는데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제대로 하려면 한국당이 승리해야 하는데 지금 지지율로 되겠나.) “그러게…. 그 얘기하면 할 말이 없다. 갑자기 화가 나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