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케어’ 건보 보장률 찔끔 개선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외래 접수창구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문재인 케어’ 시행 후 상급병원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대형 병원 쏠림 현상이 가속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해 국민 의료비를 줄이겠다는 목표로 추진하는 ‘문재인 케어’가 시행된 후 동네 병의원이 급여 항목 확대로 생긴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비급여 진료를 늘리고 있는 사례다. 당장은 부담하는 비용이 적지만 비급여 진료의 증가가 전체 의료비 상승이나 실손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결국 환자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2017년 8월 발표된 문재인 케어는 2022년까지 30조6000억 원을 투입해 3800여 개 비급여 대상을 급여화해서 개인 의료비에서 건강보험 급여비가 차지하는 비율(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10년 넘게 60%대 초반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 정부는 ‘점진적 확대가 아닌 획기적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 상급종합 및 종합병원은 건강보험 보장률이 오른 반면에 병의원 보장률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오히려 더 떨어졌다. 비급여 진료 비중은 병원이 34.1%였고, 의원은 22.8%로 전년보다 3.2%포인트 올랐다.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역대 모든 정부가 급여 항목을 늘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장에서 비급여가 늘어났기 때문에 보장률 강화에 실패했다”며 “비급여를 잡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말했다.
급여 항목이 늘자 ‘과잉 진료’도 늘고 있다. 지난해 개인 진료비 총액은 93조3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11.4%나 늘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후 지급금으로 진료비가 폭증한 2016년을 제외하곤 근래 가장 큰 증가 폭이다. 자기공명영상(MRI), 초음파, 병실료 등이 급여화하면서 이용 횟수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전체 진료비가 늘면 보장률을 동일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장 금액을 더 많이 투입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건강보험 보장률 목표치인 70% 도달도 어려울뿐더러 3500여 개 항목의 급여화를 마무리하는 데도 더 많은 돈이 들어갈 것으로 예측한다. 건강보험 재정은 지난해 1778억 원 적자로 돌아섰다. 정부의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 따르면 올해 3조1636억 원, 내년 2조7275억 원 등 2023년까지 6년간 9조6932억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재정 고갈을 막으면서 건강보험 보장률을 획기적으로 높이려면 현 급여·비급여 운영체계를 손보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많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비급여를 의료기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도록 둔다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며 “미국 등 선진국처럼 민간 의료보험 대상 비급여 항목을 정하고 정부와 민간이 가격과 서비스를 함께 관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일본처럼 급여·비급여 혼합 진료를 금지해 비급여를 제한하는 대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