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富하게도, 亡하게도 하는 이웃… 애국주의 과하면 서로 나쁜 이웃 돼 국가 지탱하는 건 국민 애국심이지만 타국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도록 나라도 언론도 책임 있게 행동해야
송평인 논설위원
아사히신문의 그 사설은 한국 언론에 널리 보도됐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에서 애국주의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한국에서는 오히려 애국주의를 강화하는 데에 이용된다는 점이다. 아사히신문은 같은 사설에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도 경솔했다고 쓰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일본의 주요 언론도 우리 입장에 동조한다’가 되고 만다. 결국 잘못된 기대로 갈등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든다.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논증하는 데 앞장섰으나 2012년 대법원 소부(小部)의 징용 배상 판결에는 비판적인 서울대 국제법 교수가 있다. 지난해 같은 내용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내려진 후 그에게 연락을 취했다. 마침 그가 독일에 가 있어서 이메일로 의견을 듣고 싶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날 저녁 그가 서울대 홍보실을 통해 내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밤늦게 국제전화를 걸어와서는 자기 이름이 거론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판결 후 정부의 대응이었다. 사법부 판결이므로 존중해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며 손을 놓았다. 그러나 정부는 한일 청구권협정의 당사자다. 일본에서 새로운 배상을 받아내지 못하면 이미 배상받은 정부에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나 몰라라 하다가 한일 갈등이 전례 없이 커지고 나서야 뒤늦게 봉합에 나섰다. 국회의장이 대타로 나서 추진하는 ‘문희상 안(案)’이라는 것이 일본 기업 돈을 조금 섞어서 우리 기업과 국민이 배상하는 것이다. 이럴 거면 왜 쓸데없이 갈등을 키웠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언론은 대단히 애국적이다. 런민일보 자매지인 환추시보는 사드 배치를 지지하는 한국인들을 향해 김치만 먹어 멍청해졌느냐는 논평 등으로 종종 논란이 되는 신문이다. 중국 언론으로서는 한국의 사드 배치를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국의 대표 음식을 들어 그것만 먹다 멍청해졌느냐는 표현은 필요 이상으로 상대국 국민을 자극하는 것이다.
나는 14일 중국 청두에서 런민일보사가 주최하는 한중일+10개국 미디어포럼에 참석했다. 토론회 사회를 후시진 환추시보 총편집인이 맡았다. 그는 패기 넘치고 언변에 능했지만 파키스탄 등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지원을 받는 주변국들로부터 중국에 대한 감사를 끌어내는 한편 한일 언론의 홍콩 사태 보도 태도를 비판하는 등 분위기를 고약하게 이끌어갔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런민일보만 해도 행간을 읽어야 뜻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장황하고 조심스러운 표현을 쓰고 배급망도 우편만 이용한다. 환추시보는 런민일보와 달리 가판대에서 팔리고 그 수익으로 운영된다. 중국인의 애국심을 직접 자극하는 노골적인 표현을 쓰면 더 많이 팔린다고 한다. 요즘 수익을 많이 내서 런민일보사 재정에 크게 기여하는 까닭에 후시진이 런민일보사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이라는 말을 런민일보사의 다른 관계자들로부터 들었다. 중국 언론이 상업망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애국심을 이용한다는 인상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