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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의 늪[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입력 | 2019-12-18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아이(infant)의 라틴어 어원은 ‘말을 못하는’입니다. 영국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콧은 소아과 의사 출신의 정신분석가였습니다. 아이의 심리 발달에 초점을 두고 정신분석 이론을 펼쳤는데 그가 한 유명한 말이 “아이와 같은 것은 없다”입니다. 원 세상에! 이 넓은 천지에 아이가 없다니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엄마를 빼고는 아이를 말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이의 심리 발달을 엄마를 빼고 논하지 말라는 겁니다. 아이가 엄마와 주고받는 정서적 교감이 아이가 마음을 키워 나가는 데 꼭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다르게 보면 아이는 아이고 엄마는 엄마인, 전혀 다른 몸이고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도 100%의 아이, 순도 100%의 엄마는 없습니다. 때로는 개인과 개인으로, 때로는 합쳐진 하나의 연합체로 시간을 보냅니다.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고, 혼자가 아니지만 혼자입니다. 아이와 엄마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아이와 엄마의 관계는 정신분석 상황에서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분석가와 피분석자는 서로 다른 사람입니다만 분석 과정에서 마음과 마음이 만나고 헤어짐을 되풀이합니다. 피분석자에게 분석가가 지지(support)적 태도를 보인다면 싫어할 이유는 없겠지요. 하지만 섣부른 지지는 분석의 늪이 될 수도, 피분석자에게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지자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따뜻이 돌보아주는 분석가에게 피분석자가 감히 거슬리거나 화를 부르는 말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정신분석의 기반은 분석가와 피분석자 사이의 정서적 동맹입니다. 정서적 동맹이 확고하다고 생각될 때 오히려 조심해야 합니다. 동맹의 달콤함에 취해 두 사람 모두 한 발자국의 시도조차 할 수 없다면 분석은 제자리에 머뭅니다. 목적지를 잊어버린 채 역에 멈춰서 시간을 보내는 기차처럼 되어 버립니다. 정신분석은 안정과 도전이 조화롭게 같이 부르는 이중창(二重唱)이어야 합니다. 리듬을 맞추면서 이제까지 가지 않았던 길을 가서 살펴야 분석이 진행됩니다. 그때 피분석자는 듣기 좋은 이야기만을 하려 하고 분석가는 100점짜리 해석만을 하려 한다면 난관에 빠집니다. 서로에게 틀릴 수 있는 여유를 허용해야 합니다. 맞으면 맞는 대로, 틀리면 틀리는 대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면 됩니다.

세상이 계속 어지럽습니다. 정치인에게는 지지층과 반대파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반대파는 어차피 반대파여서 오히려 대하기 쉽습니다. 문제는 지지층과의 관계입니다. 그들이 나를 지지하는 이유는 내 생각과 그들의 생각이 같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내 생각이 그들의 생각과 달라지는 순간 그들은 좌절하고 분노하고 저항합니다. 저항은 지시, 심지어 명령의 형태로 돌아옵니다. 원래 위치로 돌아오라고 외칩니다. 돌아가지 않으면 다양한 형태로 보복이 뒤따를 겁니다. 대중적 인기와 표가 사라질 것이 두렵습니다. 그렇게 뻔히 앞이 보이니 나는 지지층에 영합합니다. 애정과 관심을 보이고 그들의 뜻을 따릅니다. 그러다가 지지의 늪에 서서히 빠지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정치인으로서 가졌던 초심은 무디어지고 정치적 판단력은 허물어집니다. 끝내는 내 역할이 정치 지도자인지 지지층의 추종자인지 혼란에 빠집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 선생이 오래전에 이미 말한 바 있습니다. 대충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 해석을 환자가 받아들이지 않아도 내 해석이 꼭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받아들여도 내 해석이 꼭 맞았다는 말은 아니다. 해석 뒤에 새로운 기억, 꿈, 연상이 이어진다면 그게 제대로 된 해석이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내 정치적 신념이나 행위에 대해 지지층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맹목적으로 매달린다면 정치는 실종될 겁니다. 모든 정신분석적 해석이 불완전한 것처럼 모든 정치적 행위도 불완전합니다.

정신분석가는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잘 내야 합니다. 제대로 알아듣게 분명하게 이야기하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평소 목소리와 분석 목소리가 같아야 피분석자에게 신뢰감이 듭니다. 분석가의 일은 목소리 연출이 아니고 마음의 치유입니다. 태도도 중요합니다. “피분석자가 무엇을 알겠는가. 전문가인 내 생각이 중요하다! 도와주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식으로 자만하는 분석가가 있다면 큰일입니다. 의도가 좋다고 해서 태도를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인의 목소리 일관성과 태도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빠르게 달리는 두 사람이 있다면, 대화가 가능할까요? 자전거를 버리고, 천천히 어깨를 마주 대고 걸어야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엄마와 아이는 기가 막히게 서로를 알아보고 소통합니다. 말 못하는 아이조차 그러합니다. 정치인들은 왜 안 되나요? 온 사방에 거짓이 널려 있어 거짓을 참이라고, 참을 거짓이라고 해도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거짓을 참이라고 계속 우기면서도 마음이 그리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불이익과 고통을 무릅쓰고 참의 발견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점점 찾기가 힘들어집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