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야구 스토브리그 ‘쩐의 전쟁’ 선수들엔 천사, 구단엔 공공의 적… 선수 보는 눈 정확해 구단들 수긍 게릿 콜 3776억원 등 대박 행진… 류현진 대형 계약도 자신감 피력 관중 준 한국 시장은 FA 찬바람… 경험 많은 구단 프런트 협상 주도 보라스급 에이전트 등장 어려워
조응형 스포츠부 기자
스토브리그는 야구 경기가 없는 겨울에 팬들이 새 시즌을 기다리며 난로(스토브) 주변에 앉아 선수 계약과 다음 시즌 운영에 대해 토론을 한다는 데서 나온 표현이다. 그라운드에서의 치열한 승부가 끝나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더 뜨거운 ‘쩐의 전쟁’이 시작된다. 선수들의 성적은 시간(계약 기간)과 돈(계약금)으로 환산된다. 구단들은 필요한 선수를 사고팔면서 다음 시즌 전력 강화를 노린다.
○ MLB는 보라스 원맨쇼
이번 시즌 MLB 스토브리그는 ‘슈퍼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67)의 독무대가 되고 있다. 선수들을 대신해 구단과 몸값을 흥정하는 에이전트들은 ‘스토브리그의 꽃’이라 불리는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제 실력을 발휘한다. FA 계약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시기는 MLB 30개 구단 관계자가 모여 다음 시즌 리그 운영에 대해 논의하는 윈터 미팅이다. 보라스는 이번 시즌 윈터 미팅 기간인 10일부터 12일까지 투수 게릿 콜(뉴욕 양키스)에게 9년 3억2400만 달러(약 3776억 원), 투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워싱턴)와 내야수 앤서니 렌던(LA 에인절스)에게 각각 7년 2억4500만 달러(약 2855억 원)를 안기는 등 고객들의 빅딜을 연달아 성사시키며 합계 1조 원이 넘는 ‘잭팟’을 터뜨렸다. 2015년 맥스 셔저(워싱턴)의 7년 2억1000만 달러, 지난해 브라이스 하퍼(필라델피아)의 13년 3억3000만 달러 등 굵직한 계약을 성사시킨 보라스는 매 시즌 스토브리그를 달구는 주인공이 됐다.
보라스는 세이버매트릭스에 기반한 각종 통계 기록과 선수 나이, 신체 능력 등 다양한 자료를 활용한 몸값 협상을 처음으로 시도하며 MLB에서 대체 불가한 에이전트로 떠올랐다. 보통 MLB 에이전트의 수수료는 FA 전체 계약 금액의 4∼5% 수준이지만 보라스는 5∼6%를 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시즌 보라스는 콜, 스트라스버그, 렌던 ‘빅3’ 계약만으로 약 483억 원을 벌어들였다.
○ 대박 계약을 노리는 류현진은 과연
A급 선수에게 S급 계약을 안기기로 유명한 보라스와 대형 계약을 체결하는 구단들은 계약 이후 선수가 부상 등으로 부진에 빠지는 ‘먹튀’ 사례로 막심한 손해를 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구단들이 그에게 손을 뻗는 이유는 선수들의 재능을 알아채는 눈이 누구보다 정확하기 때문이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의 재능을 미국에서 가장 먼저 간파한 이도 보라스다. 2012년 MLB 도전을 선언한 류현진과 에이전시 계약을 맺은 보라스는 류현진을 정상급 좌완 투수인 마크 벌리(MLB 통산 214승 160패 평균자책점 3.81)와 견줄 만하다고 홍보했다. 당시 구단들은 보라스의 말을 반신반의했지만 이후 류현진이 LA 다저스에서 6시즌 동안 54승 33패 평균자책점 2.98을 기록한 데다 2019시즌에는 아시아인 투수 최초로 MLB 평균자책점 1위(2.32)를 달성하면서 의심을 지웠다.
올해 MLB FA 시장은 다음 시즌 성적 향상을 노리는 팀들이 많아 과열 분위기다. 특히 대형 선발 투수들이 일찌감치 행선지를 결정하면서 선발 투수 보강이 절실한 팀들은 얼마 남지 않은 대어급 투수 자원을 놓고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이고 있다. 미 스포츠전문매체 ‘디 애슬레틱’의 칼럼니스트이자 MLB 대표 소식통인 켄 로즌솔은 17일 “업계에서는 류현진이 최소 4년 계약 기간에 8000만 달러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토론토, LA 에인절스, 미네소타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 MLB는 돈 잔치, KBO는 찬 바람
천문학적인 ‘돈 잔치’를 하고 있는 MLB와는 달리 이번 시즌 한국 프로야구 FA시장은 냉기가 감돌고 스토브리그가 개장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전체 FA 승인 선수 19명 가운데 계약자는 이지영(키움·3년 18억 원), 유한준(KT·2년 20억 원), 정우람(한화·4년 39억 원)뿐으로 총액 77억 원에 머물렀다. 지난해 총 15명의 FA 선수 중 4명이 연내 계약을 마치며 총액 320억 원(양의지 125억 원, 최정 106억 원, 이재원 69억 원, 모창민 20억 원)을 기록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안치홍 김선빈(이상 KIA), 오지환(LG), 전준우(롯데) 등이 대어급으로 분류됐지만 아직까지 한 건의 계약도 성사되지 않았다. 6년 계약을 원했던 오지환은 FA 계약을 원 소속 구단 LG에 ‘백지위임’하며 구단의 카드대로 도장을 찍기로 했다. 2016년 이대호가 롯데와 4년 150억 원, 2017년 최형우가 KIA와 4년 100억 원, 2018년 김현수가 LG와 4년 115억 원 등 100억 원대 계약이 매년 이어지던 것과 달리 올해는 관중 수 감소 등 악재가 겹치면서 50억 원대 계약도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올해 프로야구 관중은 728만6008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80만 명 가까이 줄었다.
KBO는 선수들이 구단과의 협상력을 높이고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도록 지난해 2월부터 공식적으로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오랜 실무 경험을 가진 구단 프런트가 주도권을 잡고 있어 MLB의 보라스코퍼레이션같이 협상력이 뛰어난 에이전트의 등장은 시기상조라는 평가가 있다. 지금까지는 MLB의 강정호, KBO의 박병호 김현수 등 굵직한 선수들을 보유한 ‘리코스포츠’가 지난해 양의지 이재원의 대형 계약을 이끄는 등 성과를 내 성장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조응형 스포츠부 기자 yes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