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12·16 대책 세우며 현실 파악 제대로 했나[현장에서/정순구]

입력 | 2019-12-19 03:00:00


관계부처 합동 부동산 대책 브리핑 현장.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정순구 산업2부 기자

“가계약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관련 사항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16일 정부가 대출과 세금, 청약제도를 망라한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대책이었던 만큼 집을 사기로 하고 가계약을 걸어놨던 수요자들은 큰 피해를 볼 위기에 놓였다. 가계약 피해와 관련한 대책을 묻는 기자에게 책임 있는 정책 담당자는 가계약과 같은 부동산 거래 실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변한 것이다.

가계약은 시장에서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 특히 가격 상승세가 매섭던 서울 아파트를 매입하려는 수요자는 집주인에게 계약 의지를 보이기 위해 실제 계약을 진행하기 이전에 500만 원에서 1000만 원가량의 가계약금을 입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번 대책으로 가계약 당시 예상했던 대출이 나오지 않으면 주택 매입을 포기해야 하는 수요자가 많다. 이때 집주인에게 미리 송금한 가계약금은 포기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관계 부처는 가계약 거래의 현황과 실상은커녕 그런 관행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정책을 수립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부처 담당 과장급 공무원은 연락이 닿는 것조차 어려웠다. 겨우 통화에 성공한 기자들에게는 “출입기자가 아닌데 전화해서 관련 내용을 묻는 것은 예의에 벗어난 것”이라는 퉁명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정부의 기습적인 정책 발표로 시장이 큰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나온 정책 담당자의 대응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무책임했다.

급히 마련된 12·16 부동산 대책에는 구체적인 기준 등이 명확하지 않아 국민들의 의문과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대책 발표 당일에는 15억 원이 넘는 아파트의 임차보증금 반환 목적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한다고 밝혔다가 바로 다음 날인 17일 번복한 것이 대표적이다. 시중은행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정부가 매주 변화하는 KB국민은행의 부동산 ‘시세’로 대출 기준을 정하기로 한 탓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횟집도 아니고 대출 규제를 어떻게 ‘시가’로 결정하나”라고 지적했다.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시간에 쫓겨 정책을 만들고 시행도 급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출 전면 금지 같은 강력한 대책을 바로 시행하면서 정책 보완에 대한 태도가 이처럼 무책임하고 경직돼 있다면 시장의 혼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더 나은 주거 환경을 찾아 이사를 하려던 무주택자나 1주택자들이 범법자는 아니지 않은가. “현장의 상황은 파악하지 못한 채 책상 앞에서 규제를 만들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조급한 정부 정책으로 발생하는 부작용의 피해는 실수요자들에게 돌아간다. 부작용과 혼란을 최소화하려는 정책 당국의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한 때다.

정순구 산업2부 기자 soon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