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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주권 경계 불분명한 지역, 패권주의 확산에 분쟁 속으로

입력 | 2019-12-19 03:00:00

[키워드로 보는 혼돈의 2019]
<7> 지정학적 모호성 (Geopolitical Ambiguity)




대만, 북아일랜드, 카슈미르, 시리아 북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미국 국제전문 온라인매체 슬레이트는 첨예한 영토 분쟁과 주권 갈등이 벌어져 전 세계에 무질서와 혼란만 퍼뜨리는 듯한 이 지역이 역설적으로 국제평화와 안정에 기여해 왔다고 진단했다. 영토와 주권의 경계가 불분명해 ‘지정학적 모호성(Geopolitical Ambiguity)’이 극대화한 상황에서 대립하는 양측 모두 현상 유지에 집중해 전쟁 같은 더 큰 분쟁을 막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중국, 영국, 인도, 터키, 러시아 등이 패권주의적 행태를 드러내면서 올해 곳곳에서는 이 지정학적 모호성이 대폭 감소했다. 분쟁을 벌이는 쌍방이 서로의 물리적 국경을 강화하고 영토 문제를 내세운 탓이다. 슬레이트는 “엄격하고 획일적인 국가주의 정책을 펼치는 각국 정부가 자국민을 무법천지로부터 보호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더 혼란스러운 세상을 만들었다. 지정학적 모호성은 분명한 용도가 있다”고 강조했다.

슬레이트에 따르면 대만은 지정학적 모호성의 ‘교과서’다. 미국은 중국과 수교한 1979년부터 대만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대사관도 없다. 반중 성향의 대만 정치인도 공개석상에서 완전 독립을 주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미국은 매년 대만에 최신 무기를 판매하고 있다. 비영리단체 미국재대만협회(AIT)가 사실상 대사관이라는 점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중국도 겉으로는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이런 암묵적 합의로 대만이 중국과의 전쟁 대신 독립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중국의 패권주의가 불거지면 언제까지 이를 유지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홍콩도 마찬가지다. 6월부터 반년 넘게 반중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위대가 행정장관 직선제 등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해도 “일국양제가 끝나는 2047년 홍콩이 중국에 편입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영국 영토지만 과거 아일랜드의 일부였고 지리적으로도 아일랜드 섬에 있는 북아일랜드도 비슷하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추진으로 북아일랜드의 지정학적 모호성이 감소하면서 후폭풍이 불고 있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모두 EU 소속이었던 과거와 달리 영국이 EU를 떠나면 국경 약 500km에 물리적 장벽을 세우고 깐깐한 출입국 및 세관 심사를 해야 한다. 물류·관세비용 증가, 주민 불편, 경제 악영향이 뒤따른다. 이에 EU와 이혼해도 영국 전체가 경제적으로는 EU 관세동맹에 몇 년간 남거나, 북아일랜드만 관세동맹에 잔류하거나, 북아일랜드에 영국과 EU 모두의 관세체계를 동시에 적용하는 등 여러 대안이 등장했지만 모두 불발됐다. 영국에서도 12일 조기총선에서 압승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내년 1월 31일 반드시 브렉시트를 단행하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어 불확실성만 커지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지인 잠무카슈미르(인도령 카슈미르)는 1947년 두 나라가 영국에서 독립했을 때부터 인도가 지배했다. 하지만 약 1300만 명의 인구 중 70%가 무슬림이어서 독립이나 파키스탄으로의 편입을 원하는 테러가 끊이지 않는다. 이에 인도 정부도 지난 72년간 잠무카슈미르에 자치권을 보장해 이곳의 지정학적 모호성을 인정했다.

힌두 우선주의를 앞세워 5월 말 재선에 성공한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8월 잠무카슈미르의 자치권을 박탈했다. 파키스탄이 실효 지배하고 있는 아자드카슈미르(파키스탄령 카슈미르)까지 손에 넣을 뜻을 밝혀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도 “국제 평화는 그래서 딜레마다. 강대국이 아니면 평화가 지켜지기 어렵고 강대국에 의한 평화는 ‘제국주의’로 비판받는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포기한 상황에서 모호성 감소로 인한 추가 분쟁 지역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윤태 기자 oldspor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