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타리스트 폴 길버트. 사진=폴 길버트 홈페이지
“원래 꿈은 가수였는데 목소리가 별로였어요. 근데 이 기타만 쥐면, (빠른 속도로 연주하며) 저도 높은 음과 좋은 소리를 뿜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길버트는 인터뷰 내내 단어보다 음표를 더 많이 썼다. 쉴 새 없이 기타를 치며 작곡법과 연주 철학을 설명했다. 기타는 그의 샴쌍둥이이나 대변인 같았다.
폴 길버트 홈페이지
길버트는 근래 고 신해철과 연을 맺었다. 지난해 신해철이 이끈 밴드 ‘넥스트’의 곡을 연주한 영상으로 화제가 됐고, 올해 5월 신해철 데뷔 30주년 기념 앨범에서도 기타 연주를 맡았다.
비슷한 비극을 그 역시 지척에서 겪었다. 미스터 빅 멤버로 30년간 동고동락한 드러머 팻 토피가 파킨슨병과 싸우다 지난해 숨진 것.
한국 공연 장면. AIM 제공
길버트는 이날 저녁 콘서트에서 미스터 빅의 대표곡 ‘To Be with You’와 ‘Green-Tinted Sixties Mind’도 기타 연주로 재해석해 들려줬다. 길버트가 작곡한 ‘Green-Tinted…’는 강렬한 기타 인트로로 유명한 곡. 그는 “폴 매카트니의 ‘My Love’, 비치 보이스의 ‘God Only Knows’에도 나오는, ‘m7♭5’ 코드를 활용해 만든 노래”라고 설명했다.
길버트는 전동 드릴 끝에 기타 픽(pick)을 달아 연주하는, 서커스 같은 ‘드릴 주법’으로도 유명하다.
“셀프 패러디예요. 사람들이 연주 속도에만 관심을 보이는 데 지쳐 고안했죠. ‘진짜 빠른 걸 보여줄까? 어때, 정말 바보 같아 보이지?’ 하는 심정이었죠.”
폴 길버트. AIM 제공
193㎝의 장신인 길버트는 손가락 길이가 웬만한 성인의 두 배에 달해 보였다.
“길어서 좋아요. 중지와 새끼를 이용한 이런 빠른 트릴(trill), 긴 엄지를 활용한 뮤트(mute) 주법을 잘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닐 숀(그룹 ‘저니’ 멤버)이나 앵거스 영(‘AC/DC’ 멤버)은 손이 작아도 믿기 힘든 연주를 해내죠.”
“어제(13일)가 토피의 생일이었어요. 아직도 마음이 힘들고 그가 정말 그립습니다. 미스터 빅의 곡을 연주할 때마다 토피와 소중한 추억이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