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국가대표팀 수비수 김민재(베이징 궈안)는 2019 동아시안컵에서 한국의 무실점 우승에 앞장섰다. 이번 대회를 통해 더 큰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는 기량을 입증했다. 유럽 진출은 그의 목표이기도 하다. 18일 끝난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서 베스트 수비상을 받은 뒤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민재. 부산|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축구국가대표 수비수 김민재(23)는 올해 1월 뜻하지 않게 논란의 중심에 섰다. 베이징 궈안(중국)과 왓포드FC(잉글랜드)의 갈림길에서 중국 쪽을 선택하자 팬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600만 달러의 이적료(계약기간 4년)를 전북 현대에 안긴 김민재는 “가장 어려운 결정”이라고 이해를 구하면서 “성장”을 약속했다. 하지만 유럽 진출을 바랐던 팬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중국 무대로 간 국가대표 수비수들의 기량이 오히려 퇴보됐다는 ‘중국화 논란’의 와중에 김민재의 베이징행이 달가울 리 없었다. 팬들이 우려한 것도 김민재의 퇴보였다.
1년이 흘렀다. 다행히 그 우려는 기우였다. 김민재는 약속대로 성장했다. 소속팀 주전경쟁에서도, 중국 슈퍼리그의 수준급 외국인 공격수와의 대결에서도 지지 않았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에서도 부동의 센터백으로 자리를 확고히 했다.
18일 끝난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은 김민재를 위한 쇼케이스 같았다. 한국은 3전 전승은 물론이고 무실점으로 정상에 올랐다. 수비의 핵 김민재는 베스트수비상을 거머쥐었다.
신체조건(190cm, 88kg)이 탁월한 김민재는 리버풀의 대형 수비수 판 다이크를 빗대 ‘반도의 다이크’로 불렸다. 그만큼 완벽한 수비력을 자랑했다. 강력한 피지컬을 앞세운 그의 철벽 방어는 상대 공격수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터프한 움직임과 유연한 발놀림, 그리고 빠른 판단력은 독보적이었다.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수비수 김민재. 스포츠동아DB
패스 능력도 돋보였다. 최후방에서 볼을 잡아도 그냥 넘기지 않고 동료의 움직임을 보면서 드리블 또는 롱패스로 기회를 노렸다. 벤투 감독이 선호하는 후방 빌드업에 최적화된 수비수였다. 공격에도 적극 가담했다. 2차전 중국전 결승골이 대표적이다. 코너킥 상황에서 헤더로 깔끔하게 마무리한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3차전 일본전에서도 똑 같은 장면이 연출될 뻔했지만 골대를 맞히고 말았다.
‘탈아시아급’이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아울러 유럽 진출이 화두로 떠올랐다. 그의 마음도 1년 전과 많이 달라졌다. 이젠 유럽 쪽으로 기울었다. 그는 “유럽진출은 모두의 꿈이자 도전”이라고 했다. “이제 유럽으로 갔으면 좋겠다”고도 했고, “내년 목표는 유럽 진출”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왓포드를 포함해 여러 유럽구단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한국 선수의 유럽 진출을 보면 손흥민(토트넘)이나 황의조(보르도) 황희찬(잘츠부르크)을 통해 알 수 있듯 포지션은 대개 공격수나 미드필더다. 과거에도 그랬다. 수비수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영표와 같은 측면을 담당하는 풀백(윙백)이 대부분이었다. 독일 무대를 밟았던 홍정호(전북)가 거의 유일하게 중앙 수비수로 진출했지만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탁월한 피지컬과 높은 수준의 기량, 그리고 수비조직을 위한 소통 능력을 두루 갖춰야하는 센터백의 유럽 진출은 결코 쉽지 않다. 성공은 더 어렵다. 그런 까닭에 김민재의 도전은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계약기간 3년 남은 베이징 구단의 결단과 김민재의 확고한 의지가 잘 맞물린다면 내년 진출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한국축구의 수비를 대표하는 김민재는 이제 한 단계 더 높은 성장을 요구받는다. 무대는 중국이 아니라 유럽이어야 한다. 아시아 출신 센터백도 유럽에서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차례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