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한국어 회화 교재가 아니다.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전화공포증을 위한 상황별 맞춤 스크립트(대본)’다. 여기엔 식당 예약할 때, 예약 취소할 때, 교수님께 문의할 때, 쇼핑몰에 배송일 물을 때 등의 전화법이 친절하게 소개되어 있다.
‘전화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만능 표현’도 나왔다. ‘당신을 귀찮게 할 것이다’의 예의 바른 표현으로 ‘문의 좀 드리려고 하는데요’를, ‘당신 잘못이 아닌 걸 아니까 잘못한 사람 바꿔라’의 뜻으로 ‘담당 부서 연결해 주세요’를 쓰라 한다.
왜 그럴까. 취업포털 커리어 설문에 따르면 전화 공포증의 이유로 ‘말실수할까 봐’(53.9%)와 ‘말을 잘 못해서’(26.8%) 등이 꼽혔다. 여기엔 내 영역을 침범당하기 싫고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는 심리기제가 깔려 있다.
메신저는 내가 원하는 시간에 답변할 수 있는 비(非)동시적인(asynchronous) 커뮤니케이션이다. e메일이나 소셜미디어도 마찬가지다. 무언가 하고 있을 때 방해받지 않으면서 실수를 고치며 상대와 소통한다. 상대의 시간과 집중력을 존중해 생산성을 높여주는 효과도 있다. 이들은 전화나 대면(對面)접촉 등 즉각 대응해야 하는 실시간(synchronous) 커뮤니케이션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전화 통화가 편한 세대는 의아해한다. 실시간 대화로는 상대와 상호작용하며 해결책을 빨리 모색하고 교감도 이룰 수 있으며, 목소리나 말 속도 등 비(非)언어 단서를 더 잘 파악해 오해를 줄일 수 있다는 이유다. 사회성(social skill) 저하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대세를 바꾸긴 힘들 것 같다. 지금의 10∼30대는 어릴 때부터 휴대전화 문자나 버디버디, 네이트온, 카카오톡을 잇달아 쓰며 자라왔다. 디지털은 이들의 소통법을 구조적으로 바꿔 놓았다.
그럴진대 젊은이가 당신과의 전화(혹은 대화)를 슬슬 피해도 억하심정으로 그러는 건 아니니 당황 마시라. 다름을 인정하고 디지털 문법에 맞는 새로운 비언어 단서를 알아가는 것도 방법이다. 예컨대 같은 긍정이어도 ‘네’, ‘네.’, ‘넵’, ‘넵넵’, ‘넹’, ‘눼눼’ 등의 차이가 크고 여기에 붙는 문장부호는 감정을 실어 나른다. 혹은 대답할 여유를 충분히 주거나 대체 소통 수단을 찾는 게 차라리 속편할 수 있다. 식당, 마트의 무인 계산대나 쇼핑몰 챗봇(채팅로봇)은 인건비 절감 목적도 있지만 직접 소통을 불편해하는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의 소통법은 이렇게 바뀌고 있다.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