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라이어 캐리와 사슴, 아니 순록들.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거둔 저작권 수익은 2017년까지 6000만 달러(약 699억 원)로 추정된다.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 제공
임희윤 기자
얼마 전 송년회를 마치고 나오는 길, A가 말했다. 이제는 매년 누군가 하는 말이 됐다.
“올해는 연말 분위기가 참 안 난다.”
상상과 추억 속 연말 거리에는 늘 캐럴이 울려 퍼진다. 불법 복제 카세트테이프를 팔던 노점, 앙증맞은 크리스마스카드를 팔던 문구점, 커다란 교차로에 있는 대형 백화점의 입구에 스피커가 놓여 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징글벨’ ‘기쁘다 구주 오셨네’…. 꼭 이런 고전적 캐럴이 아닐 때도 있다. 미스터 투의 ‘하얀 겨울’이나 강수지의 ‘혼자만의 겨울’ 같은 노래가 하얀 눈밭이 된 거리를 배경으로…. 그냥 들리지 않는다. 울린다. 퍼진다. 또는 울려 퍼진다. 이게 맞는 표현, 적절한 묘사 같다. 적어도 캐럴에 대해서는….
#1. 애당초 한국에서 캐럴의 황금기는 1980년대였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릴까, 말까’를 한참 고민하는 영구 캐럴은 50만 장 넘게 팔렸다. 당대의 인기 개그 코너는 곧 연말이면 캐럴로 경쟁했다. 김미화 김한국의 ‘쓰리랑 부부 캐럴’, ‘네로 25시’의 최양락 임미숙 캐럴이 성탄과 코미디를 청각적으로 결합했다.
#2. 캐럴의 역사는 4세기 로마에서 시작했다. 클래식 음악의 시대를 지나며 각종 캐럴이 쏟아졌다. 교회와 성당에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일에 걸맞은 노래는 한 해도 빠짐없이 필요했던 것이다. 근대 이후에는 19세기 미국 작곡가 제임스 피어폰트가 만든 ‘징글벨’이 캐럴 세계 ‘왕좌의 게임’을 100년 이상 좌지우지했다. 캐럴은 가정에서, 일터에서, 눈 내리는 전장에서 울리고 퍼졌다.
#3. 그러다 마침내 그것이 태어났다. 1994년 11월 1일. 미국 가수 머라이어 캐리가 캐럴 앨범 ‘Merry Christmas’를 발표한 날. 캐럴의 세계, 캐럴의 역사는 뒤집어진다. 음반은 지금껏 전 세계에서 1500만 장 이상 팔렸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캐럴 음반. 특히나 수록곡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물건’이었다. 가수인 캐리와 작곡가 월터 아파나시에프가 함께 만든 이 곡은 수백 년간 불린 캐럴들을 하나둘 물리치고 감히 인간 캐럴 역사의 대명사가 됐다.
#5. 오죽하면 어제 이런 소식도 나왔다. 한 이동통신사가 음원서비스 업체와 손잡고 전국의 소상공인에게 캐럴이 포함된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연말연시 한 달간 무료로 지원하기로 했다. 서울 중구 명동의 소규모 매장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제공하고 서울 주요 상권을 도는 ‘캐럴 트럭’도 운영하기로 했다.
#6.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21일자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올랐다. 놀랍게도 발표한 지 2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신생 캐럴은 해가 갈수록 영토를 넓혔다. 2003년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 들어가 불씨가 한 차례 더 커졌다. 그 뒤로 매년 각국 차트 최상위권에 12월만 되면 유령처럼 솟아올랐다. 2017년 12월, 빌보드 싱글차트 9위까지 치고 올랐다.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음원서비스 ‘스포티파이’에서 역대 24시간 동안 가장 많이 재생된 곡이 됐다. 하루 동안 1080만 회 재생.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