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브 폰팅의 세계사 1, 2/클라이브 폰팅 지음·왕수민 옮김/1권 856쪽·3만5000원·민음사, 2권 620쪽·2만8000원·민음사
번영했던 송나라 수도 카이펑(開封)의 모습을 그린 ‘청명상하도’. 송나라의 한림학사였던 장택단(張擇端)이 12세기에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클라이브 폰팅은 “세계 여타 지역에서는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송나라 수준의 도시들이 출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민음사 제공
사이드가 던진 문제의식은 21세기에도 많은 학자,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중 한 명이 이 책의 저자 클라이브 폰팅이다. 영국 마거릿 대처 행정부에서 고위 공무원으로 근무했으며, 스완지대에서 정치학을 가르쳤던 그는 크림 전쟁, 윈스턴 처칠에 관한 저서와 수정주의적 역사관에 기초한 ‘진보와 야만’ ‘녹색 세계사’ 등 역사서로 이름을 날렸다. 오늘날 ‘빅 히스토리’(지구, 우주적 관점의 역사관)의 개척자로 불린다.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다룬 두 권의 책에서 그는 집필 방향에 대해 “유럽 중심적인 관점은 거부하고, 세계의 그 어느 지역에도 편중되지 않는 훨씬 폭넓은 세계사의 관점”이라고 반복해 강조한다. 그래서인지 그리스의 폴리스 국가, 알렉산더 대왕의 마케도니아에서 시작해 중세 유럽의 기독교 왕조를 거쳐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뻔한 세계사 서술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 사이에는 지구 곳곳에서 흔적을 남기며 삶을 영위하던 다양한 국가, 문명의 이름이 빼곡하다. 중동지역 이슬람 왕국, 중국, 몽골, 인도, 일본, 한반도, 동남아시아, 신대륙(북·남아메리카)의 문명도 세계사의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한다. 한반도에서 발생한 한글 창제와 조선 왕조의 인쇄술 발달은 세계사에서도 주목할 만한 사건으로 꼽았다.
또 유럽의 언어가 그리스어, 라틴어, 독일어, 영어 등으로 갈라져 언어로 인한 ‘상실’을 겪은 데 반해, 중국은 한자를 유지하며 방대한 양의 지식과 전통을 지킬 수 있던 점도 중국이 누린 풍요의 토대가 됐다.
근세로 넘어오며 그는 “세계사의 주역이 뒤바뀌었다”고 봤다. 세계사의 주변부에 머물던 유럽은 이때부터 세계사의 중심부로 도약한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이마저도 오래가진 못했다. 1940년 이후로 유럽의 영향력은 쇠약해졌고, 현재 아시아, 특히 중국이 잃었던 지위를 되찾고 있다고 봤다. 그는 “세계는 좀 더 정상적인 균형 상태로 돌아오는 듯 보였다”고 설명했다.
앞서 책이 처음 출간된 2000년 영국에서 저자의 견해는 획기적 발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약 20년이 지난 오늘날 책의 내용이 더는 충격적이거나 신선한 견해는 아닐지라도, 화려한 수사나 문장이 많지 않더라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오늘날 학계에서 그의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은 건, 어쩌면 우직하고 묵묵히 세계사를 서술한 그의 패기 덕분인지도 모른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