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회복의 실마리 찾기 위해서는 정책결정 패러다임 반드시 개혁해야 ‘어명’처럼 집행돼 부작용 낳은 만큼 개방 토론과 과학 분석 통해 이뤄져야
정갑영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전 총장
최근 국제 정세의 중요한 키워드는 다자간 자유무역 질서의 퇴조다. 자국의 이익보다 세계 공영(共榮)을 외치는 경제대국은 더는 찾아보기 어렵다. 당장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항소기구의 위원 임명을 거부하고 있어, 이제 무역 분쟁의 조정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 같다. 경제 회복이 늦어질수록 강대국의 보호무역은 더 확산되고, 이것이 다시 침체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시작될 것이다. 보호무역은 1930년대 초 세계 대공황을 불러온 주범의 하나였다.
이 와중에 한국은 이웃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다. 과거 자유무역을 바탕으로 기적적인 수출 주도 성장을 이룩했지만, 사드 배치와 지소미아 등 현안으로 역내 최대 무역국인 중국 및 일본과의 교역은 부진하다. 국내에서는 생산성 저하와 고임금, 노동시장의 경직 등으로 외국인 투자가 나날이 줄고, 오히려 해외로의 자본 탈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실제 한국은 원재료에서 부품과 완제품 생산에 이르는 글로벌 공급체인망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미중 갈등으로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에서 동남아로, 심지어 미국으로 리쇼어링(해외로 나간 기업의 본국 회귀)하는 글로벌 공급체인의 재편 과정에서도 한국을 찾는 기업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의 이전소득으로 겨우 2%에 턱걸이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도 불안하기 그지없다. 정부는 혁신을 진작시킬 제도 개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재정 지출은 시혜적인 분배보다 생산 기반의 확충에 집중해야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된다. 민간부문 대신 정부가 주도해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한 나라는 역사상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민간부문을 도외시하는 중앙집권적인 사회주의의 실험은 오래전 역사에서 막을 내렸다. 분배와 형평의 가치는 소중하지만, 섣부른 이념에 심취되어 실패가 자명한 정책을 더 이상 무모하게 실험해서는 안 된다. 경제는 자유로운 시장과 민간의 경쟁이 활성화되어야만, 성장과 분배는 물론이고 어떤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경쟁력이 길러진다.
경제정책은 정부가 집행하지만 그 결과는 시장의 반응에 따라 결정된다. 경제학은 사람들의 합리적 행동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이다. 교과서와 상반된 경제정책은 엄청난 사회적 부작용을 불러온다. 획일적인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 취약계층의 대량 실업을 유발하고, 분양가 상한제는 공급 부족을 불러 집값을 폭등시킨다는 경제논리가 그대로 현실에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더 늦기 전에 모든 정책이 개방적인 토론과 과학적인 분석을 거쳐 정제될 수 있도록 정책 결정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정갑영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전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