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25일로 수감 1000일째 맞는 박근혜 前대통령
#1. 박근혜 정권 ‘문고리 3인방’으로 불렸던 안봉근 전 대통령 제2부속비서관은 2심에서 선고받은 징역 2년 6개월 형이 대법원에서 6개월 동안 확정되지 않아 올 7월 구속기간 만료로 바깥에 나왔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형이 확정됐다. 그는 남은 형기를 채우러 이틀 뒤 서울구치소에 재수감됐다.
#2. 박근혜 전 대통령의 ‘손발’이었던 이영선 전 대통령 제2부속실 행정관은 최근 지인의 작은 회사에서 영업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개신교 신자인 그는 박 전 대통령 구속 이후 해외 선교 교인의 안전을 다루는 단체를 운영하다 최근 한 선교재단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성탄절인 25일은 박 전 대통령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지 1000일째 되는 날이다. 박 전 대통령이 3개 사건에서 총 징역 32년을 선고받으면서 ‘박근혜의 사람들’도 숱하게 옥고를 치르고 숨죽이며 지내고 있다. 동시에 내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다시 한 번 박 전 대통령에게 시선이 쏠리고 있는 것도 사실. ‘박근혜 메시지’가 특히 보수 통합 등 총선을 앞둔 정치 지형에 작지 않은 ‘게임 체인저’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근혜 사람들의 명멸(明滅)과 근황을 들여다봤다.
○ 출소해도 재수감 불안에 전전긍긍
“사모도 아프고 장남한테도 안 좋은 일이 생겼는데 (본인은) 감옥까지 갔으니 집안에 우환이 겹쳤지.”
김 전 실장은 2017년 1월 21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구속됐다. 2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대법원에 계류 중이던 블랙리스트 사건의 구속기간 만료로 지난해 8월 6일 석방됐다. 형사소송법상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면 사건당 구속기간은 1∼3심에 걸쳐 최대 18개월까지만 가능한 데 따른 것. 하지만 지난해 10월 5일 보수단체 지원 화이트리스트 사건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출소 61일 만에 다시 수감됐다. 이달 4일 대법원에서 재판 중인 화이트리스트 사건 구속기간 만료로 425일 만에 다시 밖으로 나왔지만 향후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면 재수감될 가능성이 높다.
김 전 실장의 후임이자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국정원 특활비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재판이 길어지면서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된 상태다. 그 역시 향후 재판 결과가 확정되면 다시 구속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도 재판을 받고 있다. 최근 이 전 실장과 만났다는 전직 청와대 인사는 “세상을 걱정하고 여러 상황에 대한 울분도 있지만 재판 때문인지 대단히 조심스러워하더라”고 전했다.
박근혜 정부 경제사령탑으로 ‘초이(Choi) 노믹스’를 주도했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정원 특활비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이 확정돼 의원직을 잃고 수감 중이다. 15일 장녀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2박 3일간 귀휴를 나왔을 때 체중이 크게 줄어든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최근 최 전 장관을 면회했다는 한 국회의원은 “살이 빠지고 근육이 붙었다고 하더라”며 “구속 초기엔 불안정해 보였는데 요즘 평정심을 되찾은 것 같다”고 전했다.
여성가족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무수석으로 승승장구했던 조윤선 전 장관, 안종범 전 경제수석,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도 재판이 길어지면서 구속기간 만료로 출소했지만 형 확정 여부에 따라 재수감될 수 있다.
○ “정호성에 ‘방송 나가라’ 권하니 절레절레”
이른바 ‘문고리 3인방’ 중 정호성 전 대통령부속비서관, 이재만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은 모든 재판이 끝나고 만기 출소한 몇 안 되는 박근혜의 사람들이다. 지난해 5월 4일 셋 중 가장 먼저 출소한 정 전 비서관은 특별한 직업 없이 주로 집에서 지내고 있다. 종종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을 만나는 게 대외활동의 전부다. 최근 만난 지인이 “조국 같은 사람도 법무부 장관 하는 세상인데 이제 당신도 방송 출연해도 되지 않느냐”고 권하자 손사래 쳤다고 한다. 이 전 비서관은 올 6월 23일 만기 출소 후 집과 병원을 오가는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의 헬스트레이너였던 윤전추 전 대통령 제2부속실 행정관은 최근 본업이었던 VIP 대상 헬스트레이너로 다시 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통령이 출소하면 피부 관리를 직접 해주겠다며 피부미용사 자격증도 땄다고 한다.
박근혜 청와대의 ‘어공(어쩌다 공무원)’ 출신 비서관과 행정관들은 대부분 생활고를 호소하고 있다. ‘늘공(늘 공무원)’ 출신은 원대 복귀할 곳이 있지만 어공 출신은 ‘적폐’ 낙인 때문인지 거의 재취업을 못 했다. 한 전직 행정관은 “청와대를 나온 후 수십 곳에 이력서를 보냈지만 한 번도 면접을 보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KBS 이사인 천영식 전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은 “원래 정권이 바뀌면 재취업하라고 일종의 실업급여처럼 3개월 정도 월급을 줘 왔는데 문재인 정권은 규정을 바꿔 이 기간을 확 줄여 모두 멘붕(멘털 붕괴)에 빠졌다”며 “요즘 알아봤더니 박근혜 정부 비서관급 중 비정규직이나마 가진 사람이 나뿐이더라”고 했다. 천 전 비서관은 내년 총선에서 대구 동갑 출마를 선언했다. 정 전 비서관과 함께 4년 내내 부속실에서 근무했던 정호윤 전 행정관은 부산 사하갑 출마를 준비 중이다.
○ 박근혜, 구속 1000일 전후 ‘총선용 메시지’?
박근혜의 사람들 가운데 다른 행보를 간 사람들도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처럼 재기에 성공한 사례도 있는 것. 황 대표는 한국당에 발을 들인 지 1년도 채 안 돼 보수 인사 중 차기 대통령 선거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최근 강경 일변도의 투쟁과 지지부진한 혁신과 보수통합 논의로 보수 진영의 우려도 사고 있지만 ‘황교안 외에 딱히 대안이 있느냐’는 말도 여전하다.
잠시 주춤했던 친박(친박근혜)계 국회의원들도 재기를 노리며 입지를 다지는 중이다. 박근혜 정부 정무수석이었던 김재원 의원은 2016년 20대 총선에서 공천 탈락했지만 이듬해 재·보궐 선거로 국회에 3번째 입성했다. 국정원 특활비로 여론조사를 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1, 2심 모두 무죄를 받았고 국가예산을 쥐락펴락하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에 이어 당 지도부급인 정책위의장까지 꿰찼다. 윤상현 의원도 20대 총선에서 비박계인 김무성 당시 대표와의 갈등으로 탈당했다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등 고초를 겪었지만 이후 복당해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맡아 대미, 대일 갈등 국면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20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진박(진짜 친박) 감별사’라 불렸던 조원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을 결사 옹위하는 우리공화당(옛 대한애국당)을 창당했다. 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현 한국당) 대표일 때 비서실장이었던 유승민 의원이 탄핵 이후 중도보수를 표방하며 창당한 바른정당은 원내 3당인 바른미래당의 한 축이 됐다.
박 전 대통령의 새누리당(현 한국당)은 탄핵 이후 세 갈래로 갈라졌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대통합을 이뤄야 승산이 있다는 데엔 큰 이견이 없다. 총선 정국에서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는 보수통합의 큰 변수다. 한국당은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메시지를 내면 자칫 보수 표가 분열될까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아무 언급 없이 총선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반면 우리공화당은 지지 메시지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조원진 의원은 “구속 수감 1000일을 전후로 늦어도 내년 1월 안에는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올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이 출소하면 1호 당원으로 모시고 모든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
조동주 djc@donga.com·이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