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개봉한 영화 ‘백두산’은 재난영화보다는 한 편의 버디무비에 가깝다. 백두산 화산 폭발을 막기 위해 의기투합하는 남한군 대위 ‘인창’역의 하정우와 북한 스파이 ‘준평’을 연기한 이병헌의 연기합이 함께 찍은 첫 영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절묘하다. ‘한반도의 운명을 떠안은 남자’라고 하면 완벽한 히어로를 연상케 하지만 하정우가 연기한 ‘인창’은 여기에 어딘가 허둥대고 긴장하는 인간미를 한 스푼 얹었다.
서울 종로구에서 20일 만난 하정우는 “시나리오에 확장 가능성이 있는 면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관객들은 여러 편의 재난영화를 보셨을 텐데 스토리 안에서 캐릭터를 새롭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잠재력을 느꼈죠. 그래서 코믹 요소를 많이 살렸어요.”
“병헌이 형이 시나리오와 다르게 수정을 많이 해서 애드리브를 했어요. 저도 그래서 덩달이 리액션을 했죠. 그 장면은 촬영하면서 저희 뿐 아니라 감독님들도, 그리고 보시는 분들도 재미있어 하셨어요.”
그는 상대역 이병헌을 가리켜 ‘뭐 하나 허투루 지나가는 법이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병헌이 형은 매 테이크 마다 같은 에너지를 쏟아요. 액션 장면을 촬영할 때 힘도 세서 ‘형 20대 같아요’라고 할 정도였어요. 왜 1등으로 살아남는 배우인지 몸소 체험했어요. 그래서 저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겠다’고 생각했지요. 병헌이 형 별명이요? ‘연기 기계’? ‘연기 알파고’라고 할까요?”
그가 주연을 맡은 ‘신과 함께 1,2’와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도 컴퓨터그래픽(CG)이 또 다른 주연이다. 아무것도 없는 블루 스크린 앞에서 감정을 잡는 것이 어색할 법 한데도 그는 “어느 촬영장이든 블루 스크린이 있을 정도로 제작 환경이 변해서 이제는 익숙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가 촬영 때 가장 불편했다고 토로한 것은 군복과 헬멧, 총으로 무장한 의상.
내년은 강제규 감독의 작품 ‘보스턴 1947’ 촬영을 위해 호주를 시작으로 모로코와 도미니카공화국 등 해외 촬영 일정이 빠듯하다. ‘걷는 사람, 하정우’라는 책으로도 잘 알려진 대로 여전히 걷는 중이다. 제작과 감독에 대한 관심 역시 놓지 않고 있다. 잘 되는 일, 기대만큼 되지 않는 일도 있지만 그는 결과에 개의치 않고 늘 그답게 유쾌하게 지내려 애쓴다.
“힘든 시간도 나중에 지나고 보면 거기에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아요. 지난해 ‘PMC: 더 벙커’ 같은 경우 아쉽지만 속상해도 또 하나의 작품으로 남기 마련이잖아요. 좋은 날이 있으면 슬픈 날, 컨디션 안 좋은 날이 있는 것처럼요.”
이서현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