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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판 잘 즐기다 갑니다”…이세돌 24년 프로기사 생활 마감

입력 | 2019-12-22 20:35:00


“한 판 잘 즐기다 갑니다.”

21일 인공지능(AI) 한돌과의 은퇴기 마지막 대국이 끝난 뒤 이세돌 9단(36)은 24년 여의 프로기사 생활을 마감하는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이 9단은 이날 전남 신안군 엘도라도리조트에서 열린 ‘브레인마사지배 이세돌 한돌’ 3번기 최종국에서 181수 만에 불계패했다. 치수는 1국 때와 마찬가지로 이 9단이 2점을 놓고 덤 7집반을 주는 것이었다.

1국이 한돌의 실수, 2국은 이 9단의 착각으로 일찍 승부가 났지만 3국은 초반 우하귀에서 치열한 수상전이 벌어지며 손에 땀을 쥐는 묘수 대결이 펼져졌다. 한돌이 먼저 백 39로 1선의 묘수를 띄우자 이 9단은 흑 40을 선수한 뒤 한돌이 예측 못한 42를 선보였다. 흑 42가 놓이자 이 9단의 승률은 70%대 후반에서 85%까지 육박해 승리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흑 64, 66의 팻감이 작았고, 흑 102마저 실수여서 승률이 50% 미만으로 떨어진 뒤에는 한돌의 완벽한 마무리가 돋보였다.

이 9단은 대국 후 인터뷰에서 “한돌이 접바둑에서는 아직 실력이 미흡한 것 같다. 실력이 나보다 좋은 후배였다면 더 좋은 승부를 펼쳤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승부사의 길을 걸으며 오늘을 비롯해 매순간마다 행복하고 의미있었다”며 “다시 태어나면 프로기사가 또 된다는 건 장담할 수 없지만 분명 바둑을 즐길 것”이라고 말했다.

1995년 입단한 이 9단은 통산 1324승 577패로 69.7%의 승률을 기록했다. 2000년 배달왕전에서 첫 국내 기전 우승을 달성했고, 2002년 후지쓰배에서 첫 세계 기전 우승으로 정상급 기사 반열에 올랐다. 그는 국수전 2연패 등 국내기전 32회 우승, 세계기전 18회 우승 등 모두 50회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2014년 그는 라이벌인 중국 구리(古力) 9단과의 10번기 대결에서 승리하는 등 14억여 원을 상금으로 벌어들이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의 바둑 인생에서 하이라이트는 2016년 알파고와의 대결. 비록 1대4로 패했지만 4국에서 백 78이라는 ‘신의 한수’로 승리하며 팬들을 열광시켰다. 이후 인공지능과의 맞바둑에서 승리한 유일한 기사가 될 것이라는 예언은 그대로 실현됐다. 그는 당시 “이세돌이라는 기사가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은 아니다” 등의 어록으로 화제가 됐다.

반면 기사 생활 도중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는 3단이 된 뒤 당시 승단대회가 의미없다며 불참해 논란을 불렀으나 결국 2003년 승단대회가 폐지됐다. 2009년 한국기원 프로기사회와 상금 출연금을 놓고 갈등을 벌인 끝에 6개월여 간 휴직을 했으며, 이번 은퇴에도 그 문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창호 9단은 그의 바둑에 대해 ‘출기불의’(出其不意)라고 표현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승부처를 만들어나가는 능력이 탁월했다는 뜻이다. 그만큼 변화무쌍하고 흥미진진한 바둑을 선보여 바둑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는 은퇴에 대해 “예전에 ‘바둑이 인생이다’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은퇴하니까 바둑이 인생의 절반 정도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은퇴 후 계획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은퇴기를 통해 그는 대국료 1억5000만 원과 1국 승리 수당 5000만 원 등 2억 원을 벌었다.

브레인마사지배 이세돌 한돌 3번기 3국백 한돌 흑 이세돌 9단 (2점 접바둑+백에게 덤 7집반)181수 끝 백 불계승62=46, 63=51, 110·123=98, 121=103, 158=142.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