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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연금사회주의’ 우려 반영은커녕 더 기울어진 복지부 수정안

입력 | 2019-12-23 00:00:00


6개 경제단체가 어제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 지침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지난달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새 지침이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우려에 의결을 보류한 바 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가 원안보다 오히려 더 기울어진 수정안을 강행하려고 하자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이 “기업 길들이기”라며 대응에 나선 것이다.

적극적 주주권 행사 지침은 실적보다 배당이 적거나 횡령, 배임 등으로 주주 이익을 훼손한 기업에 대해 정관 변경이나 이사 해임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복지부의 수정안은 유죄가 확정되기 전 수사·조사단계에서 해임을 건의한다는 독소 조항은 그대로인 반면 주주권을 행사할 예시가 삭제돼 원안보다 더 구체성이 떨어진다. 경제단체들은 “이대로라면 국민연금은 모호한 잣대와 재량적 판단으로 기업 경영에 개입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국민연금의 ‘경영 개입 단계별 추진기간’을 현행 1년보다 더 단축시킬 수 있다는 내용도 추가됐다. 기업 불안을 해소하겠다더니 오히려 노동계·시민단체의 주장을 더 반영한 것이다.

현재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기업은 전체 상장사 중 38.1%(273곳)에 달한다. 이번 지침이 의결되면 국민연금이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상장사 10곳 중 4곳의 경영에 개입할 길이 열린다. 그렇다면 국민연금기금운용위의 독립성·전문성이 중요한데 그 위원장을 복지부 장관이 맡고 있다. 정치적인 판단으로 ‘나쁜 기업’이 정해질 것이란 경영계의 우려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이 매달 꼬박꼬박 보험료를 납입하는 것은 노후 보장을 위해서다.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을 높이고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복지부의 본업이다. 경제계의 목소리를 경청해 주주권 행사 지침이 국민연금의 수익을 올려줄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결과가 되는 건 아닌지 심사숙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