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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참모 70명 출마 러시… 누구를 위한 인적 쇄신인가[광화문에서/길진균]

입력 | 2019-12-23 03:00:00


길진균 정치부 차장

“결국 몇 명이나 공천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최근 만난 ‘문재인 청와대’ 출신 인사는 이런 질문을 했다. 최근 여의도, 특히 더불어민주당 안에선 내년 총선에 나서는 청와대 참모 수가 화제다. 정부 출범 직후부터 “21대 총선에 40명 안팎의 청와대 출신이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있긴 했다. 그런데 그 규모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한 17일 하루 만에 20명이 넘는 전직 수석, 비서관, 행정관 등이 후보 등록을 마쳤다. 이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출마 시기를 재고 있는 현직 참모도 여럿 있다. 민주당 최재성 의원은 한 방송에서 “청와대 출신 중 총선에 나올 분들이 60명을 훌쩍 넘어 70명 정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 출신 인사의 총선 출마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같은 정부 안에서 이렇게 많은 대통령 참모들이 직을 던지고 한꺼번에 출사표를 낸 적은 없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치러진 19, 20대 총선에 출마한 전직 청와대 참모는 각각 10명 안팎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끝난 뒤인 2008년 4월 치러진 18대 총선 때도 노무현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출마는 30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야당은 “청와대가 총선 준비 캠프냐”고 비판하고 있다.

청와대 참모들의 대거 출마는 어쩌면 필연적 수순이다. 문재인 정부는 내년이면 집권 4년 차다. 서서히 정권 후반기에 접어든다. ‘4년 차 증후군’이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 그 예후인 권력형 비리 의혹, 인사와 정책 실패에 대한 내부 비판 등은 이미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내년 총선은 본격적인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대중 정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은 “청와대의 시간은 총선 공천까지”라며 “내년 총선이 끝나면 대통령의 시간은 끝나고, 국회의 시간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집권 세력의 위기의식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청와대 참모들의 여의도 이동 배치는 그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 정권 후반까지 국정 동력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국회에 진짜 친문(친문재인) 의원이 더 많이 포진해야 한다. 후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볼 것이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을지는 다른 문제다. 상대적으로 젊은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이 1969년생, 내년이면 51세다. 대다수가 50대 중후반의 이른바 ‘386’이다. 이들에게 다음 기회는 2022년 지방선거 또는 2024년 총선 때나 온다. 현 정부 이후다. 나이도 환갑을 바라보게 된다. 결국 ‘이번이 아니면 다음 기회는 없다’는 개인적 사정과 욕심, 정권의 필요가 맞아떨어진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

당내 시선이라고 따뜻할 리 없다. 이들 상당수는 민주당 지역구 현역 의원 116명 중 79명이 포진하고 있는 수도권 출마를 예고했다. 현역 의원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청와대 친문들을 위한 ‘물갈이’ 시도 아니냐”는 반발은 총선 화두로 떠오른 ‘세대교체론’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도 있다. 옥석 가리기 없는 청와대발 대규모 인적 쇄신 시도는 부작용만 키울 뿐이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참모들의 총선 출마를 둘러싸고 벌어진 진박(진실한 친박) 논란은 새누리당의 총선 패배로 이어졌다. 불과 3년 전 이야기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