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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의식한 뒤의 삶[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입력 | 2019-12-23 03:00:00

<8> 생드니의 순교




‘생드니의 순교’, 레옹 버나, 1874∼1886년.

바삐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라. 인생에서 건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럼요, 건강이 중요하죠. 그러나 심각하게 아파본 적 없는 사람들은 건강이 그토록 중요한지 절감하지 못한다. 건강을 잃어 보고서야, 혹은 건강을 잃을 위기에 처해 보고서야 건강의 중요성을 비로소 절감한다. 한 번도 크게 아파보지 않은 사람이 말하는 “건강이 중요하죠”와 크게 아파본 사람이 말하는 “건강이 중요하죠”는 그 울림이 다르다.

장래 희망을 한창 설계 중인 청소년을 붙잡고 물어보라. 인간은 결국 죽는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럼요, 인간은 언젠가는 죽죠. 그러나 중년에 이르지 않은 사람들 대다수는 인간이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절감하지 못한다. 죽음의 문턱에 가보고서야, 혹은 가까운 사람의 부고를 접하고서야 인간의 필멸성(必滅性)을 비로소 절감한다. 죽음의 징후를 느껴본 적 없는 어린 사람이 말하는 “인간은 죽죠”와 초로(初老)의 사람이 말하는 “인간은 죽죠”는 그 울림이 사뭇 다르다.

자신이 필멸자(必滅者)라는 것을 의식하고 사는 사람과 그러지 않는 사람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필멸을 의식하는 사람은 자신의 남은 시간을 좀 더 아껴 쓰고자 노력한다. 결국 죽는다면,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 혹자는 시간의 추격을 피해서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지기도 하고, 혹자는 마지막 연애의 망상에 골몰하기도 하고, 혹자는 불멸의 저작을 남기려 들기도 하고, 혹자는 종교에 귀의하기도 한다. 그 선택이 무엇이든 그 남은 시간은, 프랑스 파리의 초대 주교 생드니가 걸어간 시간과 닮았다.

‘자기 목을 들고 걷는 생드니’ 목판화, 작자 미상, 1826년.

순교자를 다룬 많은 서양의 종교 예술이 그러하듯, 생드니를 다룬 예술 역시 그의 순교 장면을 묘사한다. 250년경 교황 파비아노에 의해 갈리아에 파견된 생드니는 선교를 하던 중에 박해를 받아 투옥되고, 결국 참수를 당한다. 성인들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풍부히 담고 있는 ‘황금전설’에 따르면, 생드니는 도끼로 머리가 잘린 뒤에도 죽지 않는다. 죽지 않고, 자신의 잘린 머리를 두 손으로 든 채 북쪽을 향해 한참을 걸어간다. 신이 정해준 죽음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한참을 걸어간 뒤, 마침내 자신이 죽을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고는 그곳에서 쓰러진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혹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낀 상태에서 자신에게 합당한 무덤까지 걸어간 시간. 자신의 잘린 목을 들고 걸어간 이 시간. 이 생드니의 시간은 ‘필멸’이라는 생의 조건을 새삼 깨달은 뒤에도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의 시간을 닮았다.

그러면 생드니가 한참을 걸어간 끝에 마침내 묻힌 그 자리에서는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나? 죽음을 의식한 사람이 선택하곤 하는 세 가지 길(범죄, 종교, 학문)을 상징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오늘날의 생드니는 우범지대로 유명하고, 찬란한 대성당(Basilique de Saint-Denis)으로 유명하고, 파리 8대학과 13대학이 위치한 학문의 공간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파리 8대학은 그 기원이 68혁명을 계기로 세워진 벵센 실험대학이기에, 급진적 학문 전통으로 유명하다.

사후 생드니는 잘린 자신의 머리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생드니를 머리에 떠올릴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언젠가 죽을 것이고, 나는 그 죽음을 의식하고 있으며, 지금 흐르고 있는 이 시간은 그 이전에 내가 허송했던 시간과는 다르다고. 또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며, 생드니를 그린 그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다시 한번 나직하게 말해본다. 나는 이미 죽었으며, 그러기에 좀 더 살아갈 수 있다고.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