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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앞 집회 자유와 민폐[횡설수설/서영아]

입력 | 2019-12-24 03:00:00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21일 조용한 시위가 벌어졌다. 서울맹학교 학부모들이 청와대 인근의 잦은 집회로 아이들의 학습권이 침해받고 있다고 항의하는 침묵시위다. 경찰과 지자체에 공문을 보낸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변화가 없자 직접 행동에 나섰다. 하지만 이날 이들의 20m 옆에서는 민노총의 결의대회가 열렸고 ‘박근혜 대통령 무죄석방’을 요구하는 보수단체의 행진도 있었다.

▷청와대 주변이 노숙 농성과 시위의 현장이 되면서 인근 주민들은 물론이고 근처 맹학교 학생들이 받는 피해가 크다. 서울맹학교는 주된 집회 장소인 청와대 사랑채에서 불과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데 청각에 예민한 학생들은 소음에 더욱 민감하기 때문. 시각장애인들이 청각, 후각 등을 이용해 거리 환경을 익히는 보행수업도 집회 소음 때문에 몇 달째 못하고 있다고 한다. 안 그래도 노심초사가 많을 학부모들이 나선 이유다.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일대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살기 좋은 동네였다. 각종 제약은 있지만 치안이 최고였고, 무엇보다 조용했다. 농성 천막이 들어선 것은 2014년 8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76일간 농성했을 때가 유일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집권 한 달 만인 2017년 6월 “청와대 앞길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며 50년 만에 종일 전면 개방했다. 이후 1인 시위와 기자회견이 이곳에서 봇물 터지듯 열렸고, 전국금속노조 노조원들이 기습 천막 농성을 시작했지만 경찰은 제지하지 않았다.

▷민폐란 개인 또는 다수에게 피해를 주지만 법으로 처벌하기 어려운 행동을 말한다. 청와대가 민폐를 부르는 상황을 만든 책임은 없을까. 대응은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하고 있는가. 경찰이 청와대 인근에서 약 3개월째 농성 중인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집회를 내년 1월 초부터 금지하겠다고 어제 밝혔다. 종로구청은 천막과 적재물 행정대집행에 나서겠다고 한다. 하지만 집시법을 고쳐 소음 피해를 줄이는 데는 그다지 열의가 없다. 현행 집시법은 주거지·학교의 경우 주간 65dB 이하로만 집회 소음을 허용하지만 10분간의 평균 소음을 측정하기 때문에 소음을 조절하며 평균치 아래로 유지하는 꼼수로 빠져나가기 일쑤다.

▷굼뜨고 면피만 도모하는 공권력도 문제지만, 법을 논하기에 앞서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와 관계된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사실 보수건 진보건 청와대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의 정치적 주장은 타인을 설득해야 의미가 있다. 학부모들의 “약자 배려 없는 주장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호소가 설득력 있는 이유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