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이 권력의 사금고일 수 없듯
靑 선거 개입 의혹, 사라져야 할 관행

정원수 사회부장
2016년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비박계 인사를 배제하고, 친박계 인사를 공천하기 위해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로 여론조사를 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 판결문의 일부다. 서초동에서 요즘 이 판결문이 화제라고 한다.
지난해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가 김기현 전 울산시장을 낙선시키고, 송철호 울산시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검찰이 수사하면서 이 판결문이 자주 거론된다고 한다. 특히 수사 지휘권자가 윤석열 검찰총장으로 같고, 수사 대상만 정반대의 정치세력이라는 점에서 더 시선을 끌고 있다.
윤 총장은 올 상반기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정보 경찰을 통해 2016년 총선에 개입한 의혹을 또 수사했다. 총선 전 친박계를 위한 판세 분석 등 맞춤형 정보를 정보 경찰로부터 제공받은 청와대 관계자 등이 재판을 받고 있다. 권력이 정보 경찰을 싱크탱크처럼 활용하는 낡은 관행을 끊은 것이다.
당시 야당이 “적폐청산 수사의 연장선”이라고 검찰을 공격하자 윤 총장은 사석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선거가 제일 중요하다. 권력은 선거를 안 통할 수가 없지 않나. 야당은 할 수 없지만 여당은 은밀한 반칙행위로 권력을 연장하고 싶어 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 수사는 현 정부에 부담을 주는 것이다. 이 정부의 손발을 묶는 것일 수 있다.” 오히려 여당에 불리한 수사라는 것이다.
그런 윤 총장이 다시 선거 수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를 겨냥한 수사라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그는 지난달 울산지검에 사건을 맡겨두지 않고, 서울중앙지검으로 재배당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연말에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이 통과되고, 새 장관이 들어서면 수사팀이 전격 교체될 수 있다. 내년 총선이 궤도에 오르기 전에 수사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점도 변수다.
조국 사태 때 서초동 아스팔트 위 시위대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은 선출된 권력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출된 권력의 힘은 공정경쟁을 통해 뽑혔다는 전제 위에서 나온다. 여당이 박근혜 정부처럼 국가기관을 선거에 이용했다는 의혹을 씻기 위해서라도 검찰 수사가 미진하다면, 먼저 의혹을 끝까지 밝혀 달라고 요구해야 하는 건 아닐까.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