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 前 법제처장
‘헌법주의자’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정당한 목적을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헌법적 가치를 심각하게 무시한 정책들이 이 정부에 너무 많다”고 말한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김광현 논설위원
“우리나라 헌법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이 두 가지를 축으로 하고 있다. 최고의 목적은 국민행복권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 단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12·16대책은 시장경제의 기본정신도 무시한 것이다. 정당한 목적이 있다고 해도 방법이 적정해야 하고,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고, 법익의 균형성을 지켜야 하는데 이번 대책은 이러한 ‘과잉금지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충분한 상환 능력이 있는데 고가 주택이라는 이유만으로 재산 가치를 완전히 무시한 것은 기본권 침해 소지가 크다고 본다.”
―행정부의 재량권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가계 대출이 너무 많아 줄이라는 것은 행정부의 재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특정 금액 이상의 주택에 대한 전면적 대출 금지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다. 서울에 들어와서 살고 싶은 사람에게 현금 없으면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1가구 주택자에게 보유세가 너무 많아서 못 살겠으면 집 팔고 다른 데로 가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다수 국민의 배 아픔을 이용해 편을 가르고 표를 얻으려는 고약한 정책이다. 헌법적 가치인 시장경제는 신뢰와 예측의 바탕 위에서 돌아간다. 이번 대책은 기습적으로 실시돼 이런 최소한의 예측가능성을 무너뜨렸다. 기본권을 제한하더라도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했는데 경제부총리 말 한마디로 갑자기 대출을 금지했다는 점도 법 위반 소지가 있다.”
“노태우 정부 때 토지초과이득세, 택지소유상한제를 실시했다. 하도 말도 안 되는 정책이어서 국세청 고문변호사도 그만두고 공익 차원에서 헌법재판소에 헌재 소원을 냈다. 당시 토초세, 택지소유상한제는 토지공개념에 근거한 정책이라고 했는데 우리 헌법에 토지공개념이란 단어는 없다. 두 제도가 위헌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 실현되지 않은 이득에 대해 세금을 매겼다는 것인데 이번 12·16대책 가운데 종합부동산세를 급작스럽게 올린 것과 비슷하다. 종부세는 재산세를 내고 다른 부동산들과 합산해서 또 내는 것이어서 중복과세 소지도 다분하다. 토지는 그나마 공급이 매우 한정돼 있지만 주택은 그렇지 않다. 아파트만 보더라도 전체 가격에서 토지 지분이 차지하는 부분은 아주 작지 않은가. 토지에 대해서도 위헌 판결이 났는데 이번 12·16대책처럼 주택에 대한 기본권 침해는 토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위헌적 요소가 크다고 본다.”
―당시 토초세, 택지상한제 위헌 판결로 피해 보상을 모두 받았나.
“판결 결과로 나중에 피해를 보상받은 사람도 있고, 이미 토지를 처분한 사람이나 기업들도 있다고 들었다. 정부가 깊숙이 개입해서 결과적으로 실패를 불러온 정책들은 두고두고 피해를 끼친다. 함석헌 선생은 ‘역사란 한 사람이 잘못한 것을 모든 사람이 물어야 하고 한 시대의 실패를 다음 시대가 회복할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했다. 또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인간은 아버지의 죽음은 쉽게 잊지만 자신의 재산상 손해는 결코 잊지 못한다’고 했다. 이번 정부의 정책 실패에 대해 이자에 이자가 붙은 계산서가 나와 국민 전부 혹은 다음 세대까지 물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국민들도 그런 정책과 만든 사람들을 쉽게 잊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비서실장, 여당 원내대표, 경제부총리가 청와대 비서진, 정부 부처 고위공무원, 국회의원에 대해 1주택 외는 다 팔라고 사실상 지시했다. 벌써 집을 내놓은 공무원도 나왔다. 해당자들이 전전긍긍할 텐데 어떻게 보나.
―부동산 대책뿐이 아니라 이번 정부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이나 절차쯤은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대북정책이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선언, 그해 9월 19일 평양공동선언과 함께 발표됐던 남북군사합의서를 보자. 과거 7·4공동성명처럼 말 그대로 선언적 의미가 강했던 기존 남북선언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번 것은 대한민국의 국방 외교 경제 군사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고 국민들에게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주는 것이다. 이 선언이 나오자마자 통일부가 북한에 철도·도로 건설해준다고 다음 해 당장 2986억 원이 들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군사합의서는 국회 동의도 안 거친 상태에서 벌써 착착 실행되고 있다. 군사분계선에서 훈련을 중지했고, 비무장지대에서 GP를 철거했고, 한미연합훈련을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공여하는 행위’인 일반이적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닌가.
“우리 헌법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것을 버리면 헌법을 버리는 것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양대 축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다. 그리고 이를 위한 법절차 준수다. 지금 정부의 대북정책 혹은 통일정책 방향이 과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가. 지금 정부는 ‘자유’라는 용어를 빼고 싶어 하지 않나. 자유민주적이 아닌 사회주의적 또는 다른 식의 통일을 하고 싶으면 국민의 동의를 얻어 헌법부터 바꿔야 한다. 그러면 합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초헌법 행위다. 공약을 통해 집권했다 해서 판문점선언, 평양선언, 남북군사합의서가 국민적 동의를 얻었다고 볼 수 없다. 판문점선언은 국회에 제출됐지만 동의가 안 된 상태다. 이 상태에서 평양선언이 나오고 군사합의서가 집행되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헌법상 국군통수권자이지 문 대통령이 자주 말하는 것처럼 민족 조정자가 아니다.”
―너무 보수적 시각에서 본 것 아닌가.
―사회·정치 정책 가운데 위헌적 요소가 있는 것이 있다면….
“헌재가 박 전 대통령 탄핵 사유에 대해 자기 소속 정당, 정파 또는 지지 세력을 대상으로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국민의 신임을 위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정부의 정책들 가운데 자기 정파, 지지 세력만을 위한 정책들이 많다. 문 대통령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가 이뤄지는 와중에 절제된 검찰권 행사가 중요하다면서 검찰은 성찰하라고 공개적으로 말한 대목은 특정한 사건에 대해 직접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명백한 법 위반이다. 이 밖에도 국민청원제도는 조선시대의 신문고 제도와 비슷한 것인데 지금이 봉건왕조도 아니고 법률적 근거가 없는 제도다. 행정부 사안만 청원을 받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사법 입법부 관련 제도에 대한 청원까지 다 받아 국민의 의견으로 전달하면서 실질적으로 사법부에 영향을 미친다. 3권 분립을 무시한 제왕적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