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편 토론땐 자리 비우거나 딴짓… “의원들이 정치 희화화 앞장” 지적
듣는 사람도 없는데… 필리버스터 세 번째 주자로 나선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이 24일 오전 텅 빈 국회 본회의장에서 무제한 토론을 하고 있다. 이날 오전 6시 23분부터 4시간 56분간 권 의원이 무제한 토론을 하는 동안 자리를 지킨 의원은 거의 없었다. 권 의원 맞은편에 다음 토론자로 예정된 더불어민주당 최인호 의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생각 못 해봤는데…3분 안에 다녀오는 것으로 (허용하겠다).”(문희상 국회의장)
24일 오전 5시 48분경. 김종민 의원이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두 번째 토론을 하다가 이렇게 말하며 본회의장을 떠났다. 그는 2016년 2월 테러방지법에 대한 필리버스터 도중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화장실을 다녀온 선례를 제시했다.
필리버스터 중간중간 고성도 오갔다. 김 의원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문 의장이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자 권 의원은 “졸지 마세요. 나잇값을 하나, 자릿값을 하나”고 면박을 줬다. 이에 문 의장은 “당신이 (나를 의장으로) 뽑았다. 의장을 모독하면 스스로 국회를 모독하는 것이다”고 맞받았다. 하지만 문 의장의 화장실 허용을 강하게 비판했던 권 의원도 발언 2시간 30분째에 화장실로 향했다.
이날 본회의장엔 다양한 풍경이 연출됐다. 민주당 의원이 토론자로 나서면 한국당 의원들은 우르르 밖으로 빠져나갔다. 한국당 의원이 토론자로 나서면 민주당 의원들은 책을 보거나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시청하기도 했다. 한 국회 관계자는 “별의별 꼴을 다 보지만 국회의원들이 ‘정치 희화화’에 앞장서며 또 한 편의 코미디를 만들고 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행위인 필리버스터에 선거법 표결 처리를 추진 중인 ‘4+1’ 협의체가 참여 가능한지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 범여권은 한국당의 필리버스터에 대응하기 위해 민주당과 정의당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선거법 찬성 토론을 하며 맞불을 놓고 있다. 한국당 신보라 의원은 페이스북에 “자기들이 일방적으로 의사를 진행해놓고 그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토론을 한다니 이런 ‘막장 코미디’가 어디 있나”라고 꼬집었다.
박성진 psjin@donga.com·이지훈 기자